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가와 과학자적 면모
- 최초 등록일
- 2013.04.28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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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리 손에 닿는 강물은 흘러간 강물의 끝자락이자 흘러오는 강물의 시초다. 이처럼 강물은 현재의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가치 있게 보낸다면, 인생은 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연적인 시간의 거대한 흐름을 강물의 힘찬 움직임을 보며 어떠한 공통점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거대한 우주의 흐름에서 그는 가치 있는 인생을 누려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그에게 가치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르네상스 시대 속 플로렌스 도시 안으로 들어가봐야 한다.
이탈리아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국가 플로렌스는 신성로마제국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시대를 지나 중앙집권적인 체제로 사회적 안정을 꾀하였고,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여기는 인문주의를 바탕으로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지적인 도시로 떠오르게 되었다. 플로렌스 안에서 문학 분야를 비롯한 회화와 조각, 건축 분야는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었는데 이 중에서도 15세기 막바지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 명의 예술가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특히 그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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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마음의 창’이라 표현한 눈이 시각기관으로서 어떤 구조를 지니는지, 다른 기관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빛이 들어왔을 때 눈은 정확히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등 모든 각도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빛의 성질 자체도 파악해야 했는데 이 관찰 결과는 그의 그림들, 특히 초상화들을 특징짓는 데 매우 귀중한 역할을 했다. <암굴의 성모>에 그려진 성모와 천사의 얼굴에서 신비롭고 신성한 느낌이 스며 나오게 된 것은 다빈치가 꼭 알맞은 빛으로 그들의 얼굴을 비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나리자>의 수수께끼 같은 얼굴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빈치의 뛰어난 광학적 지식을 엿볼 수 있다.
그 뒤 교황 레오 10세의 요청을 받아들여 1513년 로마로 갔다가 1516년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1세와 친분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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