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와 일본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13.04.27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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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통신사는 이미 고려시대에 무로마치막부에게 왜구금지를 요청하기 위하여 관리 나흥유가 파견된 점을 볼 때 조선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사절은 회례사(回禮使), 회례관(回禮官), 보빙사(報聘使), 경차관(敬差官), 통신사(通信使), 통신관(通信官) 등 많은 명칭으로 지칭되었지만, 1413년(태종 13)에 처음 통신사의 명칭이 등장한다. 조선 전기의 3회의 통신사는 일본의 무로마치 시대에 파견된 것으로 계속되던 왜구의 침입을 금지시키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4회 통신사부터는 장군의 취임을 축하하는 성격을 띠게 되면서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장군이 새로 취임하게 되면 조선에 통신사를 요청하는 것으로 항례화된다. 하지만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것을 계기로 통신사는 두절된다. 두 차례에 걸친 조선 침략으로 이 시기에 일본은 동아시아 사회로부터 고립되기 때문에 중국?조선과의 국교회복이 시급하였다. 국교회복은 단순히 무역에 의한 재정의 강화라는 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세계로의 복귀를 의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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