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사
- 최초 등록일
- 2013.04.22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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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들어가면서
Ⅱ. 종교개혁의 요인
Ⅲ. 루터
Ⅳ. 칼 빈
Ⅴ. 로마 카톨릭의 반동
Ⅵ. 결론
본문내용
Ⅰ. 들어가면서
중세 카톨릭 교회는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해 95개조에 달하는 면죄부 반박문을 못박으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교황의 일방적인 독재아래 미신적인 신앙으로 시달림을 받던 자들이 자유를 얻게 되었다. 중세 말기에 지식인들이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풍자하며 도덕적인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중세인들에게는 인위적인 평안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평안이 절실하게 요구하게 되었는데 루터는 바로 이러한 요구를 루터가 충족시켰던 것이다. 루터는 중세의 신비주의적 경건과 예리한 지성으로 중세교회의 부정과 인위적인 가면을 벗기고서 복음의 실체를 드러냈다. 독일에서 일기 시작한 개혁의 움직임은 스위스를 거쳐서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북부지방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으며, 16세기 내내 유럽은 대변혁을 맞이하였다. 이 사이에 국가는 점차적으로 교회의 억압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문예부흥과 더불어서 지금까지의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변하였으며, 신학의 시녀로서 빛을 보지 못했던 철학이 과학적인 방법의 도입과 더불어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중 략>
2.트렌트 회의
트렌트 회의의 목적은 이단들이 점차적으로 강성해 가는 것과 교회내부의 부패상을 개혁하는 것이었다. 이런 것은 주교들의 태만으로부터 야기되었다고 밝히며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교회의 증가하는 부패는 영적 이상의 상실, 교리문제에 관한 신학적인 불명확성, 그리고 종교의 타락에 그 원인이 있었다. 따라서 제7차와 제14차 회의에서 교회개혁에 관한 중요 안건으로는 교회의무는 성직자 중임제, 그리고 감독의 소홀 등이었다. 교리문제에 있어서는 불가타판 성경을 정경으로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는 의인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의인론에 있어서도 종교개혁을 대항하는 새로운 의인론을 제시하는것이 아니라 종래의 의인론을 재확인하는데 불과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회의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는 회의에 불과 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