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겐트슈틸
- 최초 등록일
- 2013.04.18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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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독일(뮌헨)
2. Jugend와 Simplicissimus 포스터
3. 독일 뮌헨의 유겐트슈틸 디자이너(1)
4. 독일(다름슈타트)
5. Joseph Maria Olbrich
6. 독일(바이마르)
7. Henry van de Velde
8. 미술과 산업 사이의 아르누보(1)
9. 미술과 산업 사이의 아르누보(2)
10. 안토니오 가우디의 “Sagrada Familia’
11. 안토니오 가우디의 “Casa Mila-외관’
12. 안토니오 가우디의 “Casa Mila-내부’
13. 미술과 산업 사이의 아르누보(3)
14. 카를로 부가티의 ‘여성용 책상과 의자(1902, 토리노)’
15. 현대로 가는 길의 배경
16. 폴 세잔과 파블로 피카소
17. 현대로 가는 길
18. 매킨토시와 글래스고 미술학교
19. Charles Rennie Mackintosh
20. 1900년 전후의 빈(1)
21. Otto Wagner (1841-1918)
22. 1900년 전후의 빈(2)
본문내용
독일
독일의 유겐트슈틸(Jugendstil, 젊은 양식) 역시 역사주의에 대항하여 유기적으로 곡선을 이루는 장식 기술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프랑스의 아르누보에 비해 상류 사회의 살롱 취향이나 우아함이 덜함.
유겐트슈틸은 卽物的이고 構造的이며 大衆的이고 手工業的인 것들 사이에서 전개되었고, 개혁이념과 영국의 선례를 따라 설립된 다양한 공방과 협회들의 각기 다른 이론적 제안에 따른 특징들을 좀더 많이 지니고 있었음.
미술 후원자들과 정부 관리들, 그리고 기업인들의 참여 역시 중요했는데, 그들은 대부분 영국과 관계를 맺고, 독일 제품의 경쟁력을 진흥시키고자 했음.
헤르만 오브리스트(Hermann Obrist,1863~1927): “우리 모두 건전한 민중공예는 오로지 單純하고 率直하며 實用的이고 절대적으로 合目的的인 형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독일(뮌헨)
뮌헨에서도 1892년에 아카데미의 ‘제도적’ 미술에 대항하여 분리파가 형성됨. 지도자는 헤르만 오브리스트였고, 판콕, 파울, 엔델, 리머슈미트, 베렌스 등과 함께 1898년 ‘수공업 속의 미술을 위한 연합 공방’을 설립함.
이 연합공방은 1907년 ‘드레스덴 공방’과 연합하여 ‘독일 수공예 공방’이 됨. 뮌헨의 유겐트슈틸은 또한 인쇄물 그래픽에서, 그리고 <유겐트>와 <짐플리치시무스> 등의 잡지에서 풍자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을 보여 주었음.
유겐트슈틸 미술가들은 신랄한 풍자화와 포스터를 그리거나, 엔델처럼 카바레와 극장의 파사드나 장식, 그리고 인테리어를 디자인 함.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궁정 아틀리에 ‘엘비라’의 격동적으로 요동치는 파사드도 엔델의 작품임. 엔델은 오브리스트와 함께 유겐트슈틸의 표현주의적 유형을 이끈 대표적 인물이었음.
독일의 유겐트슈틸과 이 후의 발전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인물은 리머슈미트였음. 철저한 즉물성과 구조적 사고를 향한 그의 노력은 ‘기계적 가구’라는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