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창경궁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2.12.15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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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경궁에 다녀와서 여가의 이론에 따라서 분석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창경궁입장권을 스캔한것도 들어 있습니다.
목차
Ⅰ.서론
-나의 여가생활
Ⅱ.본론
1)창경궁의 약사
2)창경궁 답사
3)여가의 기능 및 특성에 따른 분석
Ⅲ.결론
본문내용
지금까지 사람에게 있어서 어떤 일을 하느냐와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하느냐가 주된 관심사였다면 최근 들어 주 5일 근무제 도입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노느냐 -노동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즉, 여가에 관한 관심 또한 증대 되고 있으며 그 관련산업의 가능성 또한 높게 점쳐 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나도 그저 놀고 먹으면 그것이 여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앞으로 내 생에서 많은 그리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여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여가에 대해서 보다 체계적으로 알아보기 위해서 여가와 생활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과제물을 준비하면서 나의 경우에는 평소에도 비교적 다양한 여가 활동 즉 스포츠(수영, 스키, 등산 등), 종교활동, 독서, 영화, 연극, 공연관람 및 음주 가무 등을 즐기고 있는 편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주제로 잡을지 무척 많은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거의 한 달에 두 번 이상은 찾게 되는 창경궁에 대해서 써보기로 하였다.
창경궁은 본시 수강궁으로 태조 4년에 낙성한 후로 자주 사용치 않아 황폐화되어 있다가,성종 14년(1483)에 왕의 조모인 정희 왕후, 모후(母后)인 소혜 왕후, 예종의 비 인순 왕후를 위하여 수리하고 확장함으로써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창덕궁에 있던 왕이 왕후 등을 자주 찾아 뵙기도 하고 조신들을 연회하기도 하던 궁궐이었던 만큼 창경궁과 창덕궁 사이의 담장이 있긴 하였으나 때로 그 경계가 모호하게 되었다.
그 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오다가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으며 광해군 8년(1616)에 재건이 이루어졌다. 이보다 7년 앞서 창덕궁이 복구되어 왕이 머물게 되었으므로,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이 궁은 잦은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는 일이 계속되었는데, 그 중 큰 화재는 인조 때와 순조 때의 화재이다. 이러한 크고 작은 화재로 말미암아 당초의 궁궐 모습에 변화가 이루어 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