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헤이그특사 파견과 그 활동
- 최초 등록일
- 2013.03.31
- 최종 저작일
-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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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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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헤이그특사의 활동과 일본정부의 방해
1. 헤이그특사의 활동과 현지언론의 반응
2. 헐버트의 활동과 세 특사와의 관계
3. 일본정부의 방해활동
Ⅲ. 헤이그특사 파견의 결과
Ⅳ. 이준의 사망에 대한 논란
1. 뺨의 종기설
2. 단독(丹毒)설
3. 자살설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905년 ‘乙巳勒約’ 제2차 한일협약, 을사조약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본 발표문에서는 최근 학계의 경향을 따라 ‘乙巳勒約’으로 부르고자 한다.
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대한제국정부와 고종은 제2차 만국평화회의 참석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차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명의 특사를 파견하게 된다. 이 세 사람은 고종의 다음과 같은 위임장에 표시된 이들이다.
大韓帝國特派委員 前議政府參贊 이상설, 前平理院檢事 이준, 前駐我公使館參書官 이위종에게 주는 委任狀
大皇帝는 勅하여 가로되 我國의 自主獨立은 이에 天下列邦의 共認하는 배라. 朕이 向者에 列邦으로부터 約을 締하고 好를 修하여 使盖가 相望하니 무릇 列邦會議에 屬한 곳에는 派員하여 往參하는 것이 道理에 應當한 것이니, 그런데 일천구백오년 십일월 십팔일에 있어서 日本이 我國에 대하여 公法을 違背하며 非理를 藉行하여 立約을 脅勒하고 우리의 외교대권을 강탈하며 우리의 列邦友誼를 단절케 하였다. 이 일본의 欺凌과 侮侵이 無所不至할 뿐 아니라 그 공리에 乖戾되고 人道에 違背하는 것이 또한 勝記할 수 없는 바가 많다. 朕의 생각이 이에 미치어 참으로 痛恨을 느끼는 바이다. 이에 여기에 종이품 전의정부참찬 이상설, 전평리원검사 이준, 전주아공사관참서관 이위종을 특파하여 荷蘭海牙府 평화회의에 前往케 하여 본국의 諸般의 苦難事情을 備藏하여 議席에 一陣하고 우리의 外交大權을 用復케 하며 우리의 列邦友誼를 復修케 하노라. 朕이 생각건대 此臣等의 素性이 忠實하여 是任에 可堪하여 마땅히 그 幹辦이 妥適할 줄로 안다. 朕命을 無墜하도록 欽哉하라.
大韓光武 11년 4월 20일 漢陽 京城慶運宮에서 押을 친서하고 寶를 鈐하노라. 윤병석, 이상설전, 일조각, 1984, 58쪽.
고종의 위임장을 들고 헤이그에 건너간 세 명의 특사들. 그들의 구체적인 활동상은 어떠했으며 고종이 그들에게 걸었던 기대는 어느 정도였을까. 또한 측면에서 특사들을 측면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헐버트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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