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수도 부산(한국전쟁)
- 최초 등록일
- 2013.03.30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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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며
2. 본론
1) 부산에서의 피난민들의 생활
2) 부산에서의 교육
3) 부산정치파동
3. 맺으며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철없던 중학교 시절, 나는 여느 여중생들처럼 아이돌 가수를 좋아했다. 그 아이돌 가수를 직접 보는 것이 그 당시 내 소원이었다. “OO오빠가 오늘 저희에게 웃어줬어요.” 이런 후기를 보면 나는 어쩌다 양산에 살아서 이런 은혜(?)를 입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인구 절반이 산다는 수도권에 살지 않을까라며 신세를 한탄하고는 했다. 만일 부산이 내일부터 당장 수도면 얼마나 좋을까, 부산이 수도면 방송국들도 부산으로 옮겨질테고, 그러면 연예인들도 부산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말이다. 뒤늦게 국사를 배우면서 부산도 한때는 수도였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부산이 수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씁쓸하게도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 했던 한국전쟁 때문이고, 게다가 한국전쟁에서 남한이 계속 밀려 낙동강까지 후퇴해야했기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중 략>
3. 맺으며
지금까지 임시수도였던 시기의 부산, 특히 피난민들의 생활, 학교교육, 그리고 정치적인 사건인 부산정치파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난민들의 삶은 고되었다. 국가는 피난민에게 거의 지원해주지 않았고, 그나마 지원해 준 것도 일부 피난민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피난민들은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갔고, 전쟁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부산에 정착하여, 부산 인구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특히나 교육관련 내용은 흥미롭다. 누군가의 말처럼 세계 교육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시연합대학이나 기타 피난학교들, 그리고 전쟁와중에도 발간되었던 교과서 등은 전쟁이라는 혼탁한 상황 속에서도 배우고자하고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하는 한국인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와 달리, 씁쓸하게도 정국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대통령은 수도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왔지만, 부산에서 국민들을 챙기긴커녕, 자신의 이익과 권력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참고 자료
안경식(2009), 「한국전쟁기 임시수도 부산지역의 피난학교 연구」, 『교육사상연구』vol.23,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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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사 기획연구실(1985),『임시수도천일』, 부산일보사
서중석(2007), 『이승만과 제1공화국-해방에서 4월혁명까지』, 역사비평사
서중석(2008),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역사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