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13.03.29
- 최종 저작일
- 2012.07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90년대 초 언저리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원수업마저 모두 끝이 나면 우리는 학원 봉고차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갔다. 서로 좋은 자리를 잡느라 얼마간 실랑이를 벌이고 난 후 자동차 시동소리와 함께 창문을 열면 오후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곤 했다. 집으로 향하는 그 무료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우리들은 각종의 게임들을 하곤 했는데, 그 게임 중에 하나가 바로 “나라이름대기”였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등 익숙한 나라이름이 오고 가는 와중에, 마지막에는 약간의 논쟁이 생기곤 했다. 바로 “쏘련”이라는 나라 때문이었다. 쏘련은 이제 해체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나라이름이 아니라는 고학년 형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그 논쟁은 끝이 나곤 했다. 집으로 돌아와 세계지도를 봤을 때 아직도 버젓이 남아있는 쏘련이라는 명칭은 다소간의 혼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러시아의 예전 이름이 쏘련이었던 것으로 결론내림으로써 다소간의 혼란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후로 학교 수업시간이나 대중매체에서 쏘련이라는 명칭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사실 쏘련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지만, 누구하나 관심을 가지길 요구한 적도 없었고, 사실 그럴 필요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서로 감추고 모르는 채 하는게 미덕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쏘련의 역사 혹은 실제 모습을 다룬 책이나 영상을 접해 본 기억도 역시 없다. 의식적으로 피한 것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까지의 교육과정과 대학에서의 교육모두 쏘련의 역사를 중요한 주제로 다룬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의 평생을 달의 앞면만을 보면서 살아간다. 만일 우주선을 타고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달의 뒷면을 볼 수 있겠지만, 그 같은 의식적인 비용을 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이 주어진 그 앞면만을 달의 전부인양, 실체인양 생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사회는 달의 뒷면에 대해 얘기해준 적이 없으며, 뒷면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말라고 요구한다. 쏘련의 역사역시 감취진 뒷면과 같아서, 그에 대한 관심은 쓸모없는 것으로, 불필요한 것으로 사회는 간주해왔다. 달의 표면을 향해 출발하는 우주선처럼 “의식적인” 비용을 들이지 않고서는, 쏘련의 실체는 영원히 무지의 영역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바만 아자드의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는 쏘련의 실체에 접근하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감추어진 뒷면을 향해가는 우주비행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참고 자료
바만 아자드, 채만수 옮김,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노사과연, 2011
칼 맑스, 김호균 옮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중원문화, 2007
폴 오스터, 황보석 옮김, 『달의 궁전』, 열린책들, 2007
『파이낸셜 뉴스』, 2012년 6월 3일 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