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영화의 제작 배경
1. 1950년대 후반의 미국 사회
Ⅱ. 영화의 역사적 배경
Ⅲ. 영화의 역사적 독해
1. 영화와 ‘쓰여 진’ 역사의 비교
ⅰ. 로마: 노예사회
ⅱ.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전쟁
ⅲ. 등장인물과 그 행적의 진위 여부
2. ‘쓰여 진’ 역사에 나타나지 않았던 영화적 역사
Ⅳ. 결론
본문내용
Ⅰ. 영화의 제작 배경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한 이른바 ‘서사시 영화’ 열풍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50년대에 이르자 영화 《벤허》의 흥행 대성공으로 절정에 달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놓친 당대의 인기 배우 커크 더글러스는《벤허》의 성공에 자극받아 노예 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모델로 한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기획하기에 이르렀으나 흥행하지는 못했다. 다만, 2004년에 명작으로 주목받아 리메이크되었다.
1. 1950년대 후반의 미국 사회
2차 세계 대전 후 국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가치관은 차츰 변화하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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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반란이 일어난 뒤 원로원은 크라수스를 ‘제 1 집정관’인 동시에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데 이것은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기원전 71년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집정관으로 파견된 겔리우스의 군대가 패배하고 공화국의 다른 군단들은 외국에 나가있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수도가 갑자기 위험에 노출되어 버린 상황에서 크라수스는 비로소 원로원에 있던 지지자들을 동원해 행동을 개시한다. 결국 집정관들은 두 개의 군단을 빼앗겼고, 크라수스에게 단독 지휘권이 부여된다. 원로원은 계속된 로마 군단들의 패배 소식에 크게 놀라면서 이들을 제압할 권한과 책임을 크라수스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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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허구, 문헌은 진실이라는 흑백논리로만 판단한다면 우리는 과거의 여러 사람들이 역사 해석에서 범했던 오류를 답습하는 꼴이 될 것이다. 모름지기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모든 방향으로 눈을 열어두고,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도록 판단 여지를 열어둬야 할 것이다.
오늘날까지 스파르타쿠스와 노예전쟁이라는 소재가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일반 서민들이 느끼기에 현재 상황이 힘들다는 반증일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점점 심해져 가고 있으며, 인간의 가치는 망각된 채 점차 자본의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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