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분석 및 해설
- 최초 등록일
- 2013.02.25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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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분석 및 해설
목차
1. <일동장유가>의 배경
2. 일동장유가의 서사 구조
본문내용
김인겸의 일동장유가 (日東壯遊歌)
<일동장유가>는 조선 후기에 김인겸(金仁謙)이 지은 기행가사로 국문으로 쓰여 있으며 총 4책 8,000여 구나 되는 장편 기행 가사이다. 이 작품은 1763년(영조 39) 8월 3일 한양을 출발하여 일본 통신사 조엄(趙湄), 부사 이인배(李仁培), 종사관 김상익(金相翊), 제술관(製述官) 남옥(南玉)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수행한 작자가 이듬해 7월 8일 경희궁에 들어가 복명할 때까지 11개월 동안 견문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1760년에 일본에서는 덕천가중(德川家重)이 관백(關白)의 자리를 그 아들 가치(家治)에게 물려주고 이듬해에 죽는다. 가치는 집권 후 우리 나라에 대하여 교린(交隣)의 구의(舊誼)를 맺자고 청해 왔다. 이에 우리 나라에서는 가치가 새로 관백의 자리에 오른 것을 축하한다는 명분에서 1763년 (영조 39년)에 수호사절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계미통신사이다.
<중 략>
12) 귀로 - 6월 13일 거센 파도와 안개를 만나 동행하던 다섯 배가 사라졌다 이튿날 다시 만난다. 조선의 남녀노소 열 한사람 고기잡이 하러 왔다가 표류하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을 준다. 대마도주의 배웅을 받고 드디어 6월 23일 부산에 도착한다. 수청들던 기생들은 모두 오지 아니하니 가창하고 가소하다. 6월 24일 한양을 향해 삼 방향으로 떠난다. 무계역에서 인품이 기특하고 얼굴이 비상한 차모 귀란이를 임도사와 홍비장에게 보냈더니 제사 핑계대고 가 버려 우습고 절도하다. 7월 8일 한양에 도착하여 조정의 여러 재상들의 환대를 받고 임금을 배알하니 여러가지를 물으시는데 일본의 문재가 많으냐고 물으시되 시율은 참혹하여 제술할 줄 모른다고 답하고 수 천수의 시를 지었다고 하니 장하다고 칭찬하셨다. 더위를 장히 먹어 더 이상 배알하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누이와 딸, 일가 친척이 반긴다. 공주로 내려 와 처자식을 만나고 편히 쉬니 강호의 산인이요, 성대의 일민이다. 한 해 만에 돌아 온 일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여 가사로 지어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