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척사운동 인쇄
- 최초 등록일
- 2013.02.20
- 최종 저작일
- 20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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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척사운동 전체 흐름
2. 성격
3. 중심층
4. 전개
5. 주장
6. 평가
본문내용
1. 척사운동 전체 흐름
1) 18C 후반~ 19C 초
① 18C 후반 북학론 대두. 당시 북학에는 서학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천주교와 분리하여 받아들이는 경우에는 문제가 안 됨
② 1791년 진산사건을 계기로 척사론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
③ 1795년 정조는 ‘척사학교’ 발표해 서학에 대해 입장 정리
④ 19C 초 노론 벽파의 남인에 대한 정치?사상 탄압(신유사옥)으로 서학은 존립기반 상실, 그리고 1839년, 66년 전부 주도의 천주교 박해
척사윤음을 전국에 반포
⑤ 재야에서는 1835년 무렵 이항로(1792~1868)에 의해 척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39년 이후에는 이론적 정립, 그 뒤 김평묵 등 제자들이 더욱 척사이론 정비
<중 략>
⑥ 이항로 학파는 임헌회 학파(주류)로부터 호응 얻지 못함
시국관의 차이 : 이항로 학파는 개항을 국가존망의 위기상황으로 보고 유생도 분연히 일어나 시국에 대한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고 봄. 임헌회 학파는 유생의 지위에서 벗어나 시국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도리가 아님, 상소운동을 유생의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이라고 비판
이러한 시국관의 차이는 임헌회 학파가 기호의 이이, 김장생, 송시열을 학문적 연원으로 생각. 이항로 학파는 주기론이 지배적인 당시 기호학계에서 주리론 주장
4. 전개
1) 척사운동은 성리학 시기부터 있었음(주자↔육구연)
(35-82) : 척화비 뽑으면서 척사운동 막 내림
<중 략>
⑥ 연미를 강력히 비판, 김홍집 처벌 요구
⑦ <조선책략> 반대 이유
- 정부가 이 책의 권고에 따라 미국과 통상조약 체결하려 한다고 여김 → 서구 열강들과 긴밀해 지는 것 막음
- <조선책략>이 당시 조선이 나가야 할 올바른 길 제시x, 뚜렷한 근거 없이 러시아를 적국으로 규정, 논리적 허점
- 청의 이해관계 반영
5) 1890년대 이후(의병운동) : 농민과 함께 의병운동 전개
5. 주장
1) 외세배격 : 외세의 정치적 침략 강화, 농산품과 공산품의 부등가 교환의 문제점 및 풍속 교란 등을 지적
2) 봉건체제 유지 : 전제군주제?신분제?지주제 유지 지향(화이사상 유지, 성리학 강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