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산업혁명과 영국의 노동운동
- 최초 등록일
- 2013.02.13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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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영국에서 최초로 진행된 생산방식의 변화인 대규모 작업장의 출현은 동력과 기계의 이용으로 생산력의 엄청난 증대를 가능하게 하여 새로운 산업의 시대를 도래시켰다고 평가되어왔다. 그러나 기계화와 증기력의 사용, 그리고 공장제의 진전은 산업화의 선도 분야 중 하나인 면직물업에서 비교적 변화가 철저히 일어났으며 여타분야에서는 전통적인 수공과 도구, 소규모의 작업장이 기계화된 큰 공장과 상호 보완적으로 공존하며 확산되었다.
전 산업적 수공과 작업습관은 기계화와 공장제에 밀려갔으며 기계의 사용과 큰 작업장의 출현이 현저하지 못했던 분야에서도 사용자의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방법들이 도입되었다. 19세기 영국의 많은 직종에서 이용된 하청제도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규모의 공장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본가가 숙련공이나 하청인에게 경영권의 일부를 양도하여 생산과정에서 노동자 관리를 좀 더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제도를 통해 제철업, 광업, 기계 제조업, 건축업 등에서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저임금으로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고한노동도 봉제업, 제화업, 레이스 제조업 등에서 확산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선대제하에서 노동자들이 보유했던 노동과정에 대한 자율적 통제권을 전면적으로 침해하였다.
< 중 략 >
1832년의 제1차 선거법 개정은 중간계급에게만 투표권을 확대하여 법의 통과를 위하여 부르주아 개혁가들과 같이 투쟁했던 노동계급을 크게 실망시켰고, 정치적 권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커졌다. 이어 1834년에 통과된 신빈민법으로 구빈금 혜택의 범위와 수준이 크게 축소되자 노동자들은 그들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으로 오언주의보다는 정치투쟁을 통한 의회와 국가권력의 장악에 주안점을 두게 되었다. 그 결과 1837년에 대두하여 1848년까지 노동계급의 대규모 운동으로서 위력을 떨친 것이 차티즘이다.
이 운동은 1837년에 런던노동자협회의 지도자들이 작성하고 이듬해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채택된 ‘인민헌장’에서 유래했다. 이 운동은 토지와 교육에 대한 개혁안과 문화적 프로그램을 제시했고, 수많은 집회, 격렬한 시위와 파업을 주도했으며 중심이 되는 목표는 인민헌장의 의회 통과였으나 참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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