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재와 연경당
- 최초 등록일
- 2013.02.04
- 최종 저작일
-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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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낙선재와 연경당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건물로 두 건물 모두 창덕궁에 위치해있다. 이 두건물이 어떻게 19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건물이며, 그 바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답사를 통해 두 건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비교해보았다. 답사에 앞서 두 건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구성방식을 간단히 조사해보았다.
연경당은 원래 왕과 왕비가 사대부 생활을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효명세자가 1828년에 사대부의 가옥과 유사한 형식으로 지었다고 한다. 효명세자가 지은 연경당은 동궐도에 묘사되었는데 지금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다. 지금의 연경당은 1846년(헌종12)년에 다시 지은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연경당의 모습은 그 당시 사대부의 집과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연경당은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단청을 하지 않았다. 또한,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있지만 내부에서는 연결되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규모에 있어 그 당시 사대부의 집보다 더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부 구성은 어떤 방식으로 되었을까? 우선 솟을 대문인 장락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마당 북쪽에는 동·서 쪽으로 두 개의 중문이 있는데, 동쪽의 장양문은 사랑채로, 서쪽의 수인문은 안채로 통하는 문이다. 사랑마당과 안마당은 사이에 담을 두르고 구분되어 있으나, 그 뒤의 사랑채와 안채 건물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사랑채 동쪽으로는 서고인 선향재가 있고, 선향재 동북 쪽 높은 곳에 정자를 지어 농수정이라 한다. 안채에는 서쪽으로도 행랑이 이어지고 부엌을 안채 건물에 붙이지 않고 안채 북쪽에 독립된 건물로 짓고 담으로 구획하여, 일반적인 사대부 주택과 차이를 두었다. 또한, 연경당에는 이전 건물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전 상류주택에서 볼 수 있었던 사당과 별당 등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록 그 당시 사대부 주택을 반영한다고 하였지만, 결국 궁궐안에 있다는 특징을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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