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관료조직
- 최초 등록일
- 2013.01.23
- 최종 저작일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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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관료조직에 대한 레포트입니다.
고려시대사 수업시간에 제출해서 A+ 받은 레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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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려초기에는 신라와 태봉의 제도를 참용하여 관을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어 서무를 보는 등 초창기에는 신라와 태봉의 관제를 많이 따랐다. 그러다가 광종 때 이르러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는데 중국의 것을 모범으로 하면서 고려 나름으로의 관제를 정비하는 때는 성종 때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최종적으로 고려의 제도가 완성된 때는 문종 때이다. 이렇게 설치된 관직은 고하(高下)에 따라 정, 종1품부터 9품까지의 품계가 매겨졌다. 이러한 9품 관제는 중국에서 빌어온 것으로 고려에서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광종 때로 추정된다. 9품 체계에서 해당하는 관직은 품관직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고하에 따라 몇 개의 재추직과 참상직, 참하직등으로 구분되고 있었다. 또한 그 아래에 품외의 이수직이 다수 설정되어 있었으며 그들도 또한 크게 인리층 이상이 시무하는 입사직과 장고가 일을 보는 미 입사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상의 실직에 비하여 산직 체계가 따로 마련되어 상층에는 검교직이 그리고 하층에는 동정직이 설치되고 있었다.
<중 략>
고려왕조는 자기 실정에 맞게끔 문무양반 관료층에게는 문산계를 주었고, 무산계는 이와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그렇다면 무산계는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주었을까. 사례를 보자면 무산계는 향리(鄕吏)23)와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노령(奴令)24)의 병사(兵士)·공장(工匠)25), 악인(樂人)26)들로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산계는 특정인들에게 주어진 영예적 칭호였다고 생각된다. 향리는 지방사회의 권력층으로써 중앙의 조정은 상층 향리들에게 무산계를 수여함으로써 향리의 지위, 실력을 인정하고 우대하는 뜻을 보임과 동시에 권력의 지방 침투를 용이하게 하고 또 향리를 포함한 각종 임무에 충실하도록 유도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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