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과 스키피오를 중심으로 본 포에니 전쟁
- 최초 등록일
- 2013.01.11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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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니발과 스키피오를 중심으로 본 포에니 전쟁에 대해 분석한 레포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차
1. 제1차 포에니 전쟁(B.C. 264∼B.C. 241)
2. 한니발, 피레나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3. 한니발의 승리, 위기의 로마
4. 로마의 구국 영웅 스키피오
5.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불행한 최후
6. 제3차 포에니 전쟁(B.C. 149∼B.C. 146)
7. 과제 후 소감 및 생각(그 누가 더 위대한 장군이었나?)
본문내용
포에니 전쟁(Bella Punica)
정의 :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세 차례의 전쟁.
전쟁기간 : 기원전 264 ~ 기원전 146년(약 118년)
주 전장 : 튀니지, 이베리아 반도, 시칠리아 섬과 사르디니아 섬
주 원인 : 시켈리아 섬의 통치권에 대한 로마와 카르타고간의 이권 분쟁
최종 결과 : 로마의 승리
포에니 전쟁(라틴어 : Bella Punica, 포이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전에서 기원전 146년 사이에 로마와 카르타고가 벌인 세 차례의 전쟁을 말한다. `포에니(poeni, 포이니)`라는 말은 라틴어 Poenicus에서 나왔는데, 이는 페니키아인이라는 뜻으로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에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로마인들이 그렇게 부른다고 전해진다.
<중 략>
로마의 구국 영웅 스키피오
- 기원전 211년 카푸아를 탈환하기까지 로마는 가능한 한 싸움에 나서지 않고 지연작전을 쓰는 한편, 한니발 군대의 지원 세력을 차단하기 위해 에스파냐에 군대를 파견했다. 한니발의 군대는 본국에서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에스파냐의 지원도 로마 군에 가로막힌 상황이었다.
이 때 젊은 스키피오의 아버지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와 숙부 그네우스 코르넬리우스는 에스파냐 전선에서 장렬히 전사한다. 로마는 에스파냐에 다시 증원군을 보내려 했지만 누구를 총사령관으로 삼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 때 스키피오는 아버지와 숙부의 원수를 갚겠다며 에스파냐 전선에 자원했다. 그의 기개와 젊음, 대중적인 인기를 감안하여 로마는 기원전 210년, 25세의 스키피오를 에스파냐로 보냈다.
<중 략>
스키피오에게는 한니발이 가지지 못한 붙임성도 있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청년 시절부터 로마 시민들의 호감을 샀으며, ‘한니발 공포’에 떨던 로마인들에게 힘찬 연설로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고 전례 없이 젊은 나이에 고위직에 올라 로마 군을 최강의 군대로 만들었다.
결국, "그 누가 더 위대한 장군이었나?" 라는 질문은 자기 자신의 몫인것 같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