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의 파장전쟁 후의 변화와 의의를 중점으로
- 최초 등록일
-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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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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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30년 전쟁의 파장전쟁 후의 변화와 의의를 중점으로
목차
Ⅰ. 서론
Ⅱ. 30년 전쟁의 발발과 종식
1) 신성로마제국과 종교개혁
2) 30년의 투쟁
3) 베스트팔렌 조약과 종식
Ⅲ. 30년 전쟁의 영향
1) 신성로마제국의 해체와 유럽의 새로운 정치 질서
2) 독일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붕괴
Ⅳ. 30년 전쟁의 의의
1) 근본적 변화의 미비
2) 중앙권력의 강화와 영역 국가의 대두
Ⅴ. 결론
본문내용
중세 시대의 도래 이후로 유럽 사회의 문화와 정치의 전반적인 영향력을 미치던 것은 가톨릭이었다. 그러나 가톨릭으로 대변되는 종교세력은 유럽 사회의 영향력을 놓고 당시 세속 정치의 선두자였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많은 시간동안 대립해왔다. 서임권1)을 비롯하여 여러 이권들을 놓고 서로 경쟁하던 교황과 황제의 대립은 십자군 전쟁을 토대로 교황의 우세로 끝나는 듯하였으나, 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오히려 교황의 세력이 줄어들고 세속 정치의 우세가 이어지게 되었다.
<중 략>
30년 전쟁의 여파는 정치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을 사실상 해체시키고 여러 제후 국가들을 발생시켜 정치적 권리의 신장을 가져왔을지는 모르나 실제로 30년 전쟁 대부분의 전투가 벌어진 독일 지역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30년 전쟁동안 범 유럽적인 살육으로 변형되어 군대를 거느린 사람은 누구나 노획을 일삼았으며 용병들은 특히 독일 여러 지역에서 닥치는 대로 살인과 약탈, 강간을 자행했다. 전쟁 기간 동안 경작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상당부분의 경작지가 황무지로 변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전염병과 기아까지 겹쳐 인구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중 략>
이러한 모습은 독일지역의 각 제후들이 스스로의 주권을 갖고 그 국가 자체 내에서의 중앙집권적인 변모를 통하여 이루어진 결과로 이러한 양상은 독일의 지방제후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자체의 황제측과 프랑스의 절대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중앙집권적 체제로의 이행은 독일 지역 내에서 기존 봉건사회보다 더한 사회적 질서를 탄압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기반이 되는 중간층에 대해 대대적 탄압이 가해졌고 이는 후에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독립적 중산 계층의 형성을 막고 단순히 국가권력에 의지하는 관리층의 형태로 국한시키는 한계를 가지고 왔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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