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학]북경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2.12.07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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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북경의 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본문내용
북경은 주대(周代) 초기부터 연(燕)나라에 속해 있었다. 연나라는 기원전221년에 진시황(秦始皇)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왕조를 이어왔다. 춘추전국의 난세를 거치면서 연나라는 여러번 도읍을 옮겼다. 그러나 대부분이 현재의 북경(北京,베이징)근처였다. 그런 까닭에 북경을 '연경(燕京)'이라고도 한다. 연나라는 전국7웅 가운데 하나였지만, 연의 도읍이란 중국 전체로 볼때는 한 지방정권의 소재지에 지나지 않았다. 10세기에 들어서면서 북경은 요(遼)나라 오경(五京) 가운데 하나였다. 요는 송(宋)과 더불어 천하를 양분하던 세력이었기에 때문에 단순한 지방정권의 성격과는 달랐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역시 북경은 중국대륙의 중심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요시대에 북경은 '남경(南京)'이라 했다. 당시의 요의 판로로는 북경이 국토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분이다.
12세기 중엽에 북경은 흑룡강(黑龍江) 유역에서 남하한 여진족이 세운 금(金)의 도읍 '중도(中都)'가 되었다. 금은 요보다는 큰나라 였지만, 엄밀하게 말해 중국의 통일 정권은 아니였다. 송이 아직까지 남방에 견제했기 때분이다.
1279년 남송이 멸망하면서 마침내 원(元)나라가 전중국을 지배하게 되고, 비로소 북경은 처음으로 중국 전체의 도읍으로서 중국의 중심이 된다. 당시 북경은 '대도(大都)'라고 불렀다.
명(明)태조 주원장(朱元璋)은 1368년에 원을 쓰러뜨리고 처음에는 남경을 도읍으로 정했지만, 영락제(永樂帝)때 북경에 자금성(紫禁城)을 짓기 시작해 1421년경에 정식으로 천도했다. 명 성조 영락제가 수도를 만들 당시에는 원의 대도가 일부 포함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새롭게 건축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이 현재 북경의 주요 골격이 되었다. 명을 이은 청(淸)도 북경을 수도로 삼아 오랫동안 정권을 지켜왔으나 북경에 근본적인 변혁을 가하지는 않았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 (진순신(陳舜臣), 예담출판사, 2000.)
·『 현대중국의 출발 』 (임상범 , 일조각 ,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