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 중영전쟁(강좌중국사)
- 최초 등록일
- 2012.11.21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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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강좌중국사 요약
목차
1. 중국 근대사의 기점에 대한 문제
Ⅰ. 제 1 차 중영전쟁
1. 배경
2. 중영무역(中英貿易)의 전개와 청조의 아편대책
3. 임칙서의 강압정책과 전쟁의 발발
4. 불평등조약체제의 성립
Ⅰ. 제 1 차 중영전쟁
1. 배경
2. 애로우호 사건
3. 영불연합군의 북경점령과 그 충격
본문내용
1. 중국 근대사의 기점에 대한 문제
- 기점을 나누는 기준 : ‘획기’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중국근대사의 내용과 특질을 무엇으로 보느냐 하는 인식과 관련됨.
① 제 1차 중영전쟁을 기점으로 보는 경우
- 서양인학자 : ‘서구의 충격’으로 ‘전통적’ 중국은 비로소 정체상태에서 깨어나 새로운 변화의 시기가 시작되었으며, 국제적 고립상태가 종식되었다는 인식.
- 중국인 사학자 : 1차 중영전쟁을 통하여 이때부터 제국주의 침략사가 시작되며, 따라서 이후의 중국사회는 ‘반식민지?반봉건사회’로 전락했다고 봄.
→ 1차 중영전쟁을 ‘획기’로 보는 면은 일치, but 외인(外因: 서구의 충격)의 역할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서로 상반됨.
- 비판
‘충격과 반응이론’에 대한 비판 : ‘서구의 충격’이 계속 정체하고 있는 중국을 깨웠다 → 중국사는 서구의 충격과 반응으로만 파악되고 이와 관련없는 것은 중요한 발전이라도 사소한 것으로 간중함.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 : 서양의 산업화?공업화를 기반으로 변화가 없는 ‘전통적’ 중국사회를 생동적인 서구의 ‘근대적’ 생명력으로 해방시켰다 → 중국에서의 중요한 역사적 변화란 서구 자신이 걸어온 ‘근대성’을 향한 과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임.
‘제국주의의 침략의 개시로 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 : ‘산업화’라는 말로써 ‘근대화’를 적극적 선으로 묘사함. 중국사회를 스스로가 산업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역사적 필요조건이 부족하다고 보는 점 → 이러한 조건을 제공하는 서구의 침입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는 사회로 보는 점에서 편견을 벗어날 수 없음.
② 16세기 후반, 혹은 17세기의 명청교체기를 근대사의 기점으로 보는 경우
- 논거 내용
이 시기에 이미 ‘자본주의 맹아’가 나타나고 있음.
이 시기가 내부적으로는 만주족이 흥기하여 청조가 성립되었으며, 외부적으로는 지리상의 발견으로 인해 서양인이 도래함으로써 서양학문이 처음으로 소개되었음.
중국의 근대는 ‘서양의 충격’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님. 서양의 추종도 아닌 서양의 복과정도 아닌 중국 나름의 독자적 역사를 전개해 왔음.
주 관심거리는 명말 이래의 도시화?상업화?화폐경제화 경향, 신사의 증가, 영토와 인구의 증 가 등의 여러 현상들임 → 1차 중영전쟁은 사회전체의 진보와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외교사?무역사 이며, 광동이나 연해지방의 사회경제사?지방정치사와 관련되는 한 사건에 불과함.
→ 19세기의 서양의 충격은 효과가 대단함. but 그것은 이미 1?2세기 전에 진행되기 시작한 변화과정이 확대?강화된 것뿐임.
☞ 청조 사회의 내적 변화추세와 ‘서구의 충격’을 아울려 살펴봄으로서 그 ‘획기’성을 분명히 함은 물론 중국 근대사의 성격을 찾아 볼 수 있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