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1910년대 역사서술
- 최초 등록일
- 2002.12.02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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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10년대 역사서술
목차
-1910년대의 역사서술
<일제시대의 반식민사학론>
- 머리말
- 민족주의사학
1) 학문적 목적
2) 식민사학의 횡포
3) 반식민사학론
4) 시대적 제약성
-맺음말
<신채호>
-현실인식과 정치·사회사상
- 신채호의 역사학과 역사관
1)「독사신론」
2)『조선상고문화사』
3)『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
-신채호사학의 사학사적 위치
<박은식>
- 국혼론적 역사인식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1)『한국통사』
2)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사학사적 의의
본문내용
-1910년대의 역사서술
근대사학이 성립해가던 대한제국 시기의 사서는 식민사학에 오염되어갔다. 그때에 근대사학의 길을 연 것이 사론으로는 신채호의 「독사신론」(1908)이었고 통사서술로는 황의돈의 『대동청사』(1909)였다. 그 후 민족사학은 망명지에서 발전하였다. 황의돈·신채호·박은식·계봉우·이상룡·김교헌·장도빈등이 만주나 연해주에서 민족사학을 일으킨 인사들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민족사학이 일어날 수 없었다. 그것은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사학자가 해외로 망명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또 식민통치의 민족동화정책으로 말미암아 민족사학이 일어나는 길이 봉쇄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단통치기인 1910년대에는 구한말의 민족사학을 계승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북간도 명동학교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황의돈이 다시 국내에 들어와 안흥·오산·대성학교등 서북지방의 민립학교에서, 또 1914년부터는 성루의 휘문과 보성학교에서 역사를 담당하여 자신이 저술한 『대동청사』를 보급함으로써 민족사학을 새롭게 일으켰다. 『대동청사』가 비록 필사본이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립학교의 교재였기 때문에 영향은 컸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동청사』가 1910년대에 크게 수정 보완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대동청사』는 1920년의 『조선통사』 또는 1922년의 『조선신사』로 발전해갔다. 한편, 장도빈이 1916년에 『국사』를 저술했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