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교회사
- 최초 등록일
- 2012.09.30
- 최종 저작일
-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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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 교회사 참고 자료입니다.
목차
제2절 19세기 독일 교회의 재건
1. 독일 교회의 개혁
2. 내적 건설
제3절 교황들과 교황령
제4절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 전사
2.공의회의 경과
제 5 절 공의회 이후 : 독일의 구 가톨릭교와 문화투쟁
1. 독일 내의 반대
2. 문화 투쟁
제 6 절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황들
제 3 기 1918 - 2000년 :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 제 1 절 귀양살이에서의 귀환과 새로운 출발
1. 독일의 게토적 상태
2. 새 교회의식 : 전례운동과 교회일치 운동
3.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국에서의 발전
제 2 절 교황 비오 11세와 비오 12세
제 3절 제 3제구에서의 교회
제 4 절 :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제 5 절 :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성과
제 6절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와 요한 바오로 2세
본문내용
제2절 19세기 독일 교회의 재건
1. 독일 교회의 개혁
빈 회의에서 교황청은 국유화된 교회 재산의 반환에 대해서는 묵묵히 단념하였다. 그 대신 교황청은 정교조약과 교구구획의 교서를 통하여 각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교구의 재조직을 보증하여 하였다. 정교조약은 주권을 가진 법인격으로 상호의 승인을 전제로 하는 교회와 국가간의 국제법상 계약이다.
2. 내적 건설
독일에서는 낭만주의가 정신사적으로, 일반적으로는 종교심의 각성에, 특수하게는 가톨릭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가치 평가에 큰 의의를 가졌다. 중세의 예술과 문학에 대한 감격으로 낭만주의는 교회에의 관심도 환기시켰다.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스스로 가톨리시즘으로 개종하였다. 즉, 남부 독일에서는 자일러 주변의 친구 서클, 뮌스터에서는 갈리친 후작 부인의 ‘성가정’, 빈에서는 성 글레멘스 마리아 호프바우어 주위의 서클 등이고, 뷔르츠부르크의 보좌주교 치르켈과 그 밖의 사람들도 같은 활동을 하였다.
정치적인 모습으로는 민중 가운데서 많은 집단들이 이른바 ‘쾰른 사건’ 때문에 처음으로 각성 되었다. 쾰른의 대 주교인 드로스테 피셔링은 교회의 입장을 변호하였기 때문에, 1837년 프로이센 정부에 체포되었다. 괴레스는 저서 [아타나시우스]를 통해 매우 감동적인 공소장을 전세계를 향하여 던졌다. 가톨릭의 공동체 의식이 각성되었다. 40년대에 뜻밖에 모두가 순 교회적,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다음과 같은 많은 새 조직들이 생겨났다. 또한 가톨릭의 수도회들도 새롭게 자극되었다. 1847년에 예수회원들이 다시 쾰른으로 들어왔다. 그들을 뒤따라 구속주회와 팔로틴회, 그리고 많은 여자 수도회들이 들어와서 정착하였다. 구 베네딕토회의 수도원들도 다시 일어나 새롭게 정착하였다.
사회적인 도처에서는 새로운 교회생활이 발전하였다. 교회가 사회문제에 문호를 개방한 것은 중요한 점이었다. 교회는 자신의 새로운 사목방법으로 인간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자선적으로, 교육적으로 돌보려 하였다. 새로운 민중사목자의 전형은 ‘장인의 아버지’인 콜핑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