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의 사회적 적대의 문제설정과 월러스틴, 푸코
- 최초 등록일
- 2012.08.20
- 최종 저작일
-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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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맑스의 사회적 적대의 문제설정과 월러스틴,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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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사회적 적대의 문제설정으로서의 맑스주의
과거 ‘정통’ 맑스주의에서 말하던 ‘지배적 세계관’(레닌), 곧 절대지식으로서의 맑스주의는 죽었다. 이 죽음은 이러한 절대지식의 담지자인 당과 대중의 분리의 다른 표현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는 이미 완료된 이러한 맑스주의의 죽음을 재확인하였을 뿐이다.
‘세계관’으로서의 맑스주의의 죽음, 당 형태의 역사의 종언이 맑스주의 자체의 소멸을 뜻하는 것일 수는 없다. 지금 소멸한 것은 맑스주의의 지배적 형상이다. ‘계급투쟁의 조건들, 형태들, 효과들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알튀세르) 내지 ‘착취 분석으로서의, 국제주의적 강령으로서의, 분업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민주주의적 봉기의 윤리와 정치의 특수한 표현으로서의, 계급투쟁의 효과들에 대한 가설로서의 맑스주의’(발리바르)는 전혀 죽은 것이 아니다. 맑스주의가 세계관이 아닌 이상 말하듯이 “내일의 사회적, 정치적, 지적 문제들 중 어떤 것도 맑스주의의 자원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지만, 계급투쟁이 역사 운동의 유일한 ‘동력’은 아니라 해도 화해불가능한 보편적 적대로 남아 있는 한 “어떤 문제도 맑스주의 없이 진지하게 대처될 수 없을 것”1)이라 할 수 있다.
<중 략>
월러스틴과 푸코의 작업에 대한 검토는 오늘날 여전히 해방의 정치로서의 대중정치를 사고하고자 하는 맑스주의자들에게 이론적 겸허의 미덕을, 즉 맑스주의의 한계들과 곤란들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해 주는 것 같다. 역으로 착취 및 착취에 관련된 압제 이외의 다른 종류의 억압들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하는 다른 이론들 역시 맑스주의 앞에 겸허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억압에 저항하고자 하는 이론이 오만하다면 그것은 또하나의 억압의 원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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