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초기 주변 부족 및 국가
- 최초 등록일
- 2012.08.10
- 최종 저작일
-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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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 건국 초기 그 주변 부족 및 국가에 대하여 서술.
목차
1. 부여
2. 말갈
3. 비류
4. 해인
5. 북옥저
본문내용
1.부여국
-부여의 명칭이 최초로 보이는 곳은 [사기]의 ‘화식열전’인데, 거기에는 “연나라는 오환과 부여에 인접해 있다.”라고 씌어 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일을 기록한 [사기] ‘흉노전’에는 “흉노 좌측왕과 장수는 동방 쪽에 있으며, 상곡으로부터 더 나아가는 자는 예맥과 조선을 만나게 된다.”고 하여 당시에는 부여라는 나라가 없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볼 때 부여는 연나라 성립 시기인 서기전 4세기를 전후하여 형성되었으며, 예맥족이 세운 국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부여는 본래 예의 땅이다.”라는 [후한서]의 기록을 볼 때 부여는 예족의 땅을 차지한 것이므로 예족이 세운 국가는 아니다. 이를 근거로 본다면 부여를 세운 사람들은 맥족이라고 보아야 한다.
부여의 위치에 대하여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있다.
<중 략>
따라서 읍루의 경계는 다음과 같이 설정될 수 있다.
“읍루는 동쪽으로 큰 바다에 접해 있으며, 남으로는 동옥저와 접해있고, 서남으로는 부여, 서북으로는 북옥저, 동북으로는 끝닿는 곳을 알지 못한다.”
이 같은 설정을 바탕으로 할 때 북옥저의 위치는 흑룡강(아무르강)의 본류와 지류로 둘러싸이며, 지금의 하바로프스크 서북방에 위치한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지역 일대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 경계는 동남쪽과 북쪽은 읍루에 둘러싸이고, 서남쪽과 서쪽은 부여에 둘러싸인다. 따라서 북옥저는 사방이 흑룡강의 본류와 지류로 둘러싸인 오각형 모양의 땅이 되는 것이다.
이는 배를 통해 읍루 사람들이 침입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굴에 들어가 살고, 겨울에 뱃길이 얼면 읍락으로 내려와 살았다는 기록을 정당화 한다. 북옥저를 현재 강단사학계의 주장대로 함경도와 두만강 이북 일부 지역에 설정한다면 읍루는 겨울에도 얼마든지 북옥저를 침입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