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 518광주민주화운동
- 최초 등록일
- 2002.11.27
- 최종 저작일
- 2002.11
- 18페이지/ MS 워드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다시 스러진 민주화의 꿈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후 헌법 제 48조 규정에 따라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했다. 최 권한대행은 27일 오전 4시를 기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는 동시에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을 임명했다.
이어 최 권한대행은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해 제 1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최 대통령은 '우리는 정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는 정부'라는 말로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려 했다. 야당인 신민당은 정부가 과도기간을 연장하는 등 불만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으나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민들 역시 유신체제라는 억압에서 막 벗어나려는 순간에 있어 정부의 조치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12월 12일 저녁 10·26 사건 수사를 맡았던 보안 사령관 전두환 소장은 9사단장 노태우 소장 등 하나회 출신의 정치군인들과 (황영시, 유학성, 박준병, 박희도, 장세동, 김진영, 최세창, 정호용, 허삼수, 이희성, 김복동.....) 함께 일련의 군사 행동을 취하였다. 全 사령관은 박대통령 암살 사건에 관련 혐의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계엄 사령관인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을 강제 연행하는 하극상의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게다가 정 총장을 연행하면서 총격전까지 벌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