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기, 호남의병
- 최초 등록일
- 2012.07.24
- 최종 저작일
- 20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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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기 호남지역의 의병활동에 대하여..
목차
1. 임란 극복의 호남의 역할.
1) 임진왜란 국력보장기지 전라도,
2. 호남의병
1) 의병의 개념
2) 의병의 내면적 성격
3) 의병활동 구성.
4) 호남의병의 활동
5) 의병활동의 특징
3. 호남의병의 활동
1) 임란초기 근왕의병의 활동
2) 흥덕의 남당창의.
3) 장성의 남문의병
4) 제1차 금산성전투
5) 제2차 진주성전투
6) 호남의병의 의의
7) 해상의병의 활약
8) 정유재란과 호남의병
4. 임란의병에 대한 연구과제
출처
본문내용
1. 임란 극복의 호남의 역할.
임진왜란 시 조선 측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경상도는 나라의 문호이고 전라도는 경제적 부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라도는 국력회복의 물적 근거지란 점에서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전라, 경상 양도부터 먼저 차지하려 했던 것이 일본군의 일차적인 목표였을 뿐 아니라
조선 측의 안위 또한 경상도, 전라도를 지키는 것에 달려있었다.
그러나 경상도가 초전에 이미 침략군의 수중에 들어간 뒤 불과 2개월만에 호남지방 일부 지역을 제외한 국토 전역이 일본군에게 유린된 상황에서 이제 국가가 의지할 바는 오로지 전라도 뿐이었다.
이와 같은 실정에서 전라 좌수사 이순신도“ 지금 호남은 나라의 보장처이니 호남이 없을 경우 국가도 없는것과 다름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국가 존망이 호남의 보전 여부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만큼 임진왜란 중 호남지방의 전략적 위치는 중차대하였고 그 역할 또한 막중했다.
<중 략>
정유재란과 호남의병
임진란 때 호남의병은 국력회복을 목표로 둔 의병전쟁으로 큰 희생을 치르긴 했으나 전란극복의 원천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유재란 시 호남지방의 사정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일본군의 재침이 바로 전라도 침략전쟁이라 할 수있을 만큼 적의 집중공격을 받은 지역이 전라도였고 그로인한 전쟁피해 또한 매우 컸다.
따라서 이때 전라도 전역은 일본군의 소굴이 되어 있어 현지에서 의병이 일어난다 해도 대부분이 소규모의 병력으로 성군한 뒤 각자의 향리를 중심으로 침략군에게 대항하는 형태의 의병전쟁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가 적에 대한 결사적 응징에 나설 수 밖에 없음을 자각하게 되었고 그것만이 가족과 향리와 나라를 동시에 지키는 최선책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때가 바로 남원성전투 이후 1개월여가 지난 9월 하순경의 일이었다.
즉 전라도 각처에서 일어난 향보의병은 바로 절박한 상황에서 결사대적 성격을 갖는 의병이었다. 수십명, 많게는 수백명에 이르는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들은 매복에 의한 유격전을 통하여 현지에 주둔한 일본군에게 대항했다.
그리고 대체로 해안이나 하천, 혹은 산간의 요해처 등 지형을 이용해 대항했으며 이것을 주도한 향촌의 사족들 대부분이 전사하였다.
참고 자료
임진왜란웅치전투와 그 전적지 -전라문화연구소
임진왜란과 호남지방의 의병항쟁 -조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