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와_미국
- 최초 등록일
- 2012.07.15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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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_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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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남북전쟁/연방 재건시대가 미국 외교의 역사에 끼친 영향.
① 근대 국민국가로의 확립
- 남북전쟁을 통해 지역/정치 세력간의 이해관계가 정리되고, 북부 공화당이 주도하게 되면서 단일 미국이 탄생하였다. 또한 연방정부의 재정권과 대통령의 권력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② 공격적인 자본가 집단이 대두
- 남부의 연방탈퇴 후 연방정부와 연방의회는 북부와 상공업의 이익을 반영하는 법안을 집중적으로 만들었고, 남북전쟁 당시 태동된 기업들은 이러한 제도를 바탕으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③ ‘땅’의 정치적 의미 퇴색
- 남북전쟁 이후 땅이 투기나 투자의 대상인 자본이 되었고, 이러한 토지관은 남북전쟁중인 1862년 ‘자작농지법’에 반영되었다. 영토확장이 불가능해진 19세기 말 부터는 ‘명백한 숙명’의 구현을 땅에서 ‘시장’으로 옮겨, 중남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한 진출도 본격화 하였다.
④ 미국 자본주의에 의한 남부의 변화
- 남부의 면화농업이 면직물공업으로 바뀌면서, 투입자본과 필요한 노동자 수가 늘어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남부는 공업화를 위한 자본과 기술은 북부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생산품의 판매는 해외시장에 의존하게 되면서 남부는 북부의 ‘시장 팽창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게 되었다.
2. 통상제국의 제도적 기반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 이후 공화당은 남부를 연방에 재통합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연방 재건시대’의 시작과 함께 미국의 휘그외교 또는 시장외교도 이때 시작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미국은 태평양과 아시아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 미국의 상공업 발전에 기여한 요인들.
19세기 중반까지 남부는 산업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을 반해했다. 북부의 급격한 인구증가에 따른 북부세력의 강화와 연방정부의 산업정책의 북부 쏠림현상으로 남북균형의 깨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부의 연방탈퇴 후 연방의회는 북부 위주의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산업자본주의가 급격히 발달하게 되면서 생산품의 해외시장 개척에 대한 정책을 요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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