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의 이해-신간회와 좌우 합작 운동
- 최초 등록일
- 2012.06.25
- 최종 저작일
- 20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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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현대사의 이해-신간회와 좌우 합작 운동
목차
서론 : 신간회 결성당시 상황
본론 : 1. 신간회
(1)신간회의 활동
(2) 신간회의 해소
2. 근우회
(1) 근우회의 결성과 이념
(2) 근우회의 활동
(3) 근우회의 해소
결론 : 신간회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서론
이 시기 사회주의 운동이 크게 고조되면서 민족주의 운동 세력과 사회주의 운동 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심해졌다.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일제를 타도하고 민족의 해방을 달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분산된 운동단체를 통합하여 독립 운동의 역량을 높이고, 아울러 좌?우로 분열된 민족운동 전선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운동이 국내외에서 일어났다.
이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조선일보 계열의 이상재·안재홍, 천도교 구파의 권동진등은 `비타협적 민족전선의 수립`을 제창하면서 자치운동에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는 한편, 3·1운동 이후 급속히 성장한 사회주의자들과의 협력을 모색했다. 사회주의자들도 초기의 계급 중심적 사고를 극복하고 1924년경부터는 `타협적` 민족운동과 `혁명적` 민족운동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26년 들어 비타협민족운동과의 협력이 조직적으로 모색되기 시작했다. 비록 실행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제2차 조선공산당의 책임비서 강달영과 권동진·안재홍·김준연 등이 비밀리에 접촉하여 자치운동세력의 움직임에 대응한 국민당 형태의 민족통일전선 조직을 결성하고자 한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하여는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질을 분명히 인식함과 동시에 과정상의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하게 승인하여, 그것이 타락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의 개량적 이일을 위해서도 종래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싸워야 할 것이다.” (정우회 선언)
비타협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협력은 1926년 11월 제3차 조선공산당의 합법적 사상단체인 정우회가 사상 단체의 통일, 실제 투쟁을 통한 대중화, 경제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의 전환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의 적극 제휴 등을 내용으로 한 행동 방침을 제창한 `정우회선언`을 발표하면서 급속히 추진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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