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공화정
- 최초 등록일
- 2012.06.10
- 최종 저작일
- 2010.06
- 2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로마의 공화정 요약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세워진 도시국가에서 출발하였다. 그 당시 에트루리아 왕정의 지배를 받았는데 로마인들은 이들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 로마 공화정의 의미는 공공의, 공동의 것 을 의미하며 귀족 과두정의 성격을 띠며,. 귀족들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권력 분립의 성격을 띠는데 공화정 초기에는 귀족이 자문기간인 원로원(Senatus)을 구성하고 원로원에서 선출된 2명의 집정관(Consul)이 국정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평민들은 중장 보병으로 군대의 주역이 되면서 정치참여를 요구하는 성산사건을 일으켰고 이후 평민회를 만들고 평민회의 의장인 호민관을 2명 선출하여 원로원의 부당한 입법과 행정조치를 거부하는 권리를 갖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여전히 평민들은 군사적 권한은 가질수 없었던 한계가 있다. 이후 기원전 450년 로마 최초의 성문법인 `12표법`을 제정하여 귀족세력을 통제하려 했으나, 귀족과 평민의 통혼, 즉 결혼이 금지된 조항이 존재하는 등 여전히 귀족과 평민사이의 불평등은 존재 하고 있었다. 기원전 367년에는 2명의 집정관중 1명을 평민 중에서 선출 할 수 있는 리키니우스(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법이 제정되었으나, 사실상 평민 중에 집정관이 될 수 있었던 자는 극히 일부 부유한 평민이였다. 기원전 287년에는 평민회를 정식회의로 인정하고 평민회의 의견이 원로원의 인증 없이도 효력을 가짐으로써 귀족과 평민의 법적 차별이 사라지게 한 호르텐시우스법을 제정하여 평민의 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기회를 마련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