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중세사 금나라
- 최초 등록일
- 2012.05.24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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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1.1. 金代 개관
금나라는 여진족이 건국한 나라이다. 여진족은 5세기 이후부터 만주 동부지방의 송화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둥그스 계통의 민족이다. 11세기에 요나라가 발해를 멸망시키자, 여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여진족은 고구려의 유민들이 말갈족들을 지배하고 발해를 건구하자 그들의 지배를 받았고 발해가 멸망한 후에는 요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여진족의 성장은 11세기를 기점으로 이루어지는데 11세기 이전까지 여진족들은 수렵생활과 농사를 짓는 반렵, 반농 생활을 하였으며 이들은 씨족사회를 이루어서 생활하였다. 11세기 중엽에 완안부(完顔部)의 추장인 석로와 그 아들 오아속 시대에는 부락민에게 법규와 교육을 가르쳐 원시적 씨족사회에서 탈피하여 부족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이리하여 주변 여러 부족을 복속시키고 그들로부터 재물과 인마(人馬)를 약탈하여 경제력을 키워 나갔다. 11세기 말에는 완안부(完顔部)의 세력이 더욱 강성하져 추장으로 추대된 아골타(阿骨打)는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요와 싸워서 승리한 후에 대금(大金)을 건국하였다. 아골타는 금의 태조가 되었으며, 황제를 칭하고 수국이라 건원하였다.
금나라는 건국한지 10여년 만에 요나를 정복하고 중국영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제국의 위엄을 이루었다. 금나라의 이러한 발전의 배경은 요나라에 대한 적개심이 여진족의 민족적인 단결이었는데, 요나라를 멸망시킨 후에는 한민족에 대한 북방민족의 대립의식이었다. 금나라는 영토의 확장과 함께 여진족의 부족국가체제에서 중앙집권체제로의 변화를 이루어냈다. 또한, 정복지에는 발해와 요나라의 통치방식을 이어받아 5경을 설치하고 수도를 상경(上京) 회영촌(會寧村)에 두었는데, 4대 해릉왕 때에 연경으로 국도를 옮기고 중국식 전제국가를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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