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과 허생전 비교
- 최초 등록일
- 2012.05.17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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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과 허생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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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호질>과 <허생전>은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다. 두 편 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있다. 본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도입 단락을 설정하였으며, 서사가 끝나는 지점에 후지를 두었다. 신랄한 조롱과 통렬한 질책으로, 시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일깨우고 있는 내용도 같은 점이다.
도입부분이 여행기인 열하일기에 두 편의 소설을 자연스럽게 녹여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면, 후지가 하는 역할은 무엇일까? 호질과 허생전의 각각의 후지에서 호질을 이민족 치하에서 비분을 참지 못한 근세 중국의 지식인의 작품으로, 허생은 1644년 청조가 북경을 접수한 뒤 조선 땅에 건너온 명나라 유이민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두 작품의 강렬한 목소리 모두를 중국, 그것도 한족 사인의 목소리에 가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작품의 내용은 조선 지식층 내부의 모순과 갈등에서 중국의 민족 갈등으로 전이 되거나, 나아가서 화이론의 세계관으로 문제가 확장된다. 박지원이 연행을 다녀온 1780년 즈음은, 화이론이 이론적으로 정리되어가면서 명나라 중심의 역사관을 기저로 한 갖가지 저작물이 활발히 편찬되고, 대명의리에 입각한 의례가 준행되던 시기이다. 박지원이 강렬한 비판자로 청조 하 명나라 사람을 지은이 또는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명나라라면 어떤 것도 용납되던 이념적 분위기를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호질의 북곽선생은 나라가 바뀐 뒤에도 그대로 그 곳에 남아 청에 아부를 하면서 사는 인물이라면, 허생전의 허생은 명나라의 유민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청나라가 들어선 후 한족이 취할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세를 인정하고 살던지, 아니면 나라를 버리고 떠나든지가 그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조선의 유학자들뿐만 아니라, 명나라 지식인들도 느끼고 있던 당대의 딜레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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