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훈민정음, 동국정운, 최만리의 반대상소에 대한 글
목차
1. 정리
ㄱ. 동국정운 서문
(1) 동국정운과 훈민정음
(2) 동국정운 서문에서 증언한 15세기 한자음
(3) 동국정운 편찬과정에서 바로 잡으려고 한 것
(4) 이영보래
ㄴ. 최만리의 반대상소
(1) 한글창제 반대상소에 대하여
(2) 한글창제 반대상소에 대한 다른 시각
2. 문제
【참고문헌】
본문내용
ㄱ. 동국정운 서문
(1) 동국정운과 훈민정음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당시의 우리나라 전승 한자음이 혼란되어 있었으므로 이것을 바로 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에서 당시의 전승 한자음을 바탕으로 하되, 중국 운학의 체계에 맞추어 정리하기 시작하여, 세종 29년(1447) 9월 하한에 「동국정운」을 완성시키고 「세종실록」 권제117 참고.
그 다음해인 세종 30년 10월 17일에는 이를 각도와 성균관 및 사부학당에 반사하였다.
한글 창제와 전승 한국한자음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한글 창제과정에서 우선 15세기 전승 한국한자음 음소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15세기 중세국어의 음소를 분석하여 한글 창제로 나아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15세기 전승 한국한자음은 중국음운학, 특히 『고금운회거요』의 체계로 보아 상당히 혼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 창제와 함께 한국한자음의 표준이 될 『동국정운』 편찬 사업이 진행되었다. 『동국정운』편찬은 한글 창제와 표리 일체의 관계에 있었고, 한글의 23자모와 『동국정운』의 23자모는 완전히 같았다.
『동국정운』 편찬은 한글 창제와 같은 시기인 1444년 초에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 『동국정운』편찬은 먼저 『고금운회거요』의 수록자 가운데 「자모운」 소속자를 그대로 옮겨 싣고 이에 대한 한글 주음부터 시작하여, 1447년 9월에 6권으로 편찬 완료하고, 1448년 10월에 간행되었다. 체계는 평·상·거·입 4성, 23자모, 91운이며, 편찬자는 『훈민정음해례본』편찬자들과 거의 같은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현로·조변안·김증 등 9명이었고, 신숙주가 서문을 썼다. 『고금운회거요』 수록자는 12652자이며, 『동국정운』수록자는 이보다 많아서 14243자다.
이 책의 편찬은 모든 수록 한자를 사성인 평·상·거·입으로써 조절하여 91운과 23자모를 정하여 가지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는 방법으로 하였는데, 「동국정운」의 음운 체계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성으로는 23자모로 정하였으니, 이것은 결국 훈민정음의 초성 체계와 같다.
둘째, 종성으로서는, “ㄱ ㅇ ㅭ ㄴ ㅂ ㅁ ㅇ ㅱ” 등이 쓰이고 있다. “ㅭ”은, 입성의 “ㄷ”을 그 당시의 통용음에 맞추면서 입성다운 특질을 살리는 방편으로 사용하였으니, 이를테면 “[舌]”, “[發]”, “[戌]” 따위이고, “ㅇ”은, 글자의 소리는 반드시 초·중·종의
참고 자료
강신항, 『훈민정음 창제와 연구사』, 도서출판 경진, 2007
김석환, 『훈민정음 연구』, 한신문화사, 1997
박종국, 『훈민정음종합연구』, 세종학연구원, 2007
조규태, 『번역하고 풀이한 훈민정음』, 한국문화사, 2000
최영선, 『한글창제 반대상소의 진실』, 도서출판 신정,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