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2.04.22
- 최종 저작일
- 20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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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래읍성에 대하여
목차
1. 서론
2. 동래 읍성의 입지
3. 동래 읍성의 풍수
4. 동래 읍성의 형태와 구조
5. 동래 읍성의 규모와 생활
6. 일제 강점기 이후 읍성의 변화
7. 동래향교
본문내용
2. 동래 읍성의 입지
동래부는 그 지리적 위치상, 전통적으로 일본과의 외교 및 통상 기능의 상당 부분을 수행해 다른 지역과 다른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16세기 왜란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동래부는 남쪽 변경 포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임란 이후 국방 요충지가 되면서 왜침 대비의 읍성 정비가 이루어져 1731년 (영조 7년) 부사 정언섭이 갱축했다.
일본과 마주 마라보는 위치의 중요성 때문에 주변의 국방상 요지에 성곽들을 두었는데 북쪽에 금정산성, 동남쪽에 좌수영성, 남쪽에 부산진성, 다대진성을 두었다. 그 중 금정산성은 둘레가 6만 8천 9백 8척으로 조선에서 가장 큰 성이었다한다.
3. 동래 읍성의 풍수
동래 읍성 풍수의 대요는 금정산을 조산으로 하여 윤산, 마안산과 그에 대응하는 황령산, 배산, 농주산으로 둘러 장풍하고, 범어천과 사천이 합수하여 득수한 전형적인 장풍득수의 명당이다.
4. 동래 읍성의 형태와 구조
자연 지형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타원형에 근접한 형태로 평산성이다.
북쪽과 남은 산으로 둘리고, 남쪽과 서가 열려 있어 남쪽이 정면이 되어 남문이 출입의 관문이다. 문은 남문을 비롯해 서문, 암문, 북문, 동문, 인생문의 6개가 있었다.
참고 자료
한국사 기행 ,조유전
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 ,부경역사연구소
내고장문화유산 부산광역시편 ,정진해
재미있는 산성여행 ,이용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