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_주거생활
- 최초 등록일
- 2012.04.20
- 최종 저작일
- 20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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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주거
조선의 주거에 대해서는 유교 윤리가 깊이 정착되어 반친영 혼인방법과 내외지법이 정착되는 조선중기 이후와 그 이전이 많이 달랐을 것이라는 전제로 접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선 전기부터 가사규제(家舍規制)가 계속되어 신분계급에 따른 주택 규모와 형식이 제한되었으나 후기에 이르러서는 유명무실해지고 궁전의 침전건축(寢殿:[임금의 침실]建築)을 모방하거나 서민들도 상류주택을 모방하였다.
남계중심, 장자우대, 출가외인 등 가부장적인 대가족 이념이 작용했던 조선 중, 후기의 주거형성은 자연히 대가족이 동거 할 수 있는 주거공간이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며, 이를 위해 주택 건축의 배치 계획이나 마을 구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함께 대가족제도는 가계의 계승권이 장자(長子)에게 있어 장남을 위한 공간이 중요시되었으며, 남녀간의 엄격한 구별로 장자가 거처하는 사랑채와 종부, 장자부가 거처하는 안채를 별동(別棟)으로 두어 각기 그 기능을 달리하며 남녀를 격리시켜 부부를 별침 (別寢)하게 했다. 따라서 양반과 하인계층으로 엄격히 구분되는 신분제도의 영향으로 상하의 구별에 의한 공간분화가 이루어지므로써 안채,사랑채 등은 상(上)의 공간이고 행랑채는 하(下)의 공간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참고 자료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서윤영의 우리건축 이야기)-p.104,112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김봉렬)-p.84,96
한국의전통풍수지리와 건축(박시익)-p.365~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