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영산포 시가지 형성과 일본인에 의한 수탈
- 최초 등록일
- 2012.03.23
- 최종 저작일
- 2012.03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정말 자세하게 정리하였습니다. 잘 할용하세요!!
목차
1. 머리말
2. 영산포의 지리적 입지
3. 일제이전의 영산포
1) 고려말 남포에서 영산현 ? 영산군
2) 조선시대의 영산포
4. 일제시대 영산포 시가지발달과정
5. 일본인의 영산포 진출과 수탈
6. 맺음말
본문내용
2. 영산포의 지리적 입지
영산포는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나주의 남쪽으로 4㎞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호남을 관통하는 영산강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영산포의 지세를 보면, 강을 따라서 포구의 배후에 작은 언덕이 서북으로 길게 펼쳐짐으로써 자연제방을 형성하여 유명한 영산강의 범람을 피할 수 있는 천혜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담양 ? 화순 ? 영암 등지로부터 시작된 상류의 지류가 이 부근에서 합류하며, 강입구로부터 조석의 영향이 이곳에까지 미쳐 조수를 이용한 선박의 통행이 가능했다.2) 그리고 기후가 온난하여 겨울에도 동결되지 않는 편리함이 있었다.
그러나 영산강의 수심이 얕아 조수가 빠지면 선박 운항에 어려움이 있었고, 이에 따라 범선으로 목포 ? 영산포간을 왕복 운항하려면 조수를 기다려야 했으므로 이틀이 걸렸다.3) 그렇지만 이 같은 불편에도 영산강의 수운은 육로나 철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유일한 운송 수단이었으며 영산포는 그 요지에 위치하였다. 영산포로부터 나주는 3.4㎞, 목포는 53.2㎞, 광주는 31.6㎞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4)
한편 영산포를 중심으로 펼쳐진 주위의 평야는 호남의 곡창지대인 나주평야 중에서도 그 중심부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강변에 펼쳐진 침수지 및 황무지는 개발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개간이 가능한 미경지 면적은 광대하여 1905년 무렵의 기록에 의하면 오히려 경지 면적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선말기까지 호남의 대읍(大邑)인 나주와 인접하여 나주 생활권에 흡수되어 있었다. 이처럼 영산포의 지리적 위치는 개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고, 전통적인 사회질서가 자리 잡힌 나주보다는 오히려 그 주변에 인접한 영산포에의 진출이 용이하였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이 지역을 개발하였을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