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카를대제
- 최초 등록일
- 2012.01.19
- 최종 저작일
- 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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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마뉴 (Charlemagne ; 742.4.2~814.1.28)
카롤링거왕조 제2대 프랑크 국왕(재위 768~814)으서 카를대제 또는 카롤루스대제라고도 한다. 카를 대제는 피핀 3세 맏아들로 태어났다. 부왕 피핀이 죽자 프랑크 왕국의 오랜 관
습에 따라 왕국은 두 아들에게 분할되나 동생이 죽자 단일통치자가 되었다.
카를 대제는 피핀의 원정에 늘 동행했다. 이러한 젊은 시절 경험은 권력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갖게 하였고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강인하게 맞섰으며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영토를 넓히려하였다. 심지어 혈연관계를 따지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한이 있더라도 냉정하게 권력을 강화해 나갔다. 몇 차례 원정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으며, 서유럽을 정치적으로 통일하였다. 중앙집권 지배를 도입하면서도 지방봉건제도를 적극 활용했고 로마 교황의 요청으로 랑고바르드 왕국을 정복하였다. 또한 북쪽 게르만인(人)들은 그때까지도 아리우스주의를 게르만인의 민족적 종교로 신봉하고 있었지만 카를 대제가 프랑켄을 통치하면서 아리우스주의가 사라지는 등 서유럽을 로마 ? 가톨릭교회 중심으로 통일하고 로마 고전문화의 부활을 장려하여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이룩하였다.
카를 대제는 772년부터 804년까지 작센족 정복, 바이에른 족 토벌, 롬바르드 통치, 아바르족과 벤드족 등을 정복하였다. 778년 여름 카를 대제 스페인으로 진격해 사라고사를 포위했지만 그 도시를 점령하지는 못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퇴각하던 프랑크 군대는 바스크족의 공격을 받고 최고 사령관 흐루오들란트 백작이 전사하면서 참패한다. 이 전투에서 전설로 남은 카를 대제 조카인 롤랑은 목숨을 걸고 퇴각하는 아군을 엄호하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아나팔을 힘차게 불어 카를 대제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이 전투 이후 프랑스 최초 서사시이자 무훈시인 「롤랑의 노래」는 걸작으로 남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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