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영유권분쟁
- 최초 등록일
- 2011.12.25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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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가 정확히 알아야할 독도 영유권 분쟁에관한 레포트이며 한국과 일본 두나라의 입장을 자세히 기술하였습니다.
목차
1장 독도의 객관적 사실관계
1절 독도의 위치
2절 독도분쟁의 역사적 배경
3절 독도분쟁의 발단
2장 독도영유권 분쟁에 대한 한국의 입장
1절 대한민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
2절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하여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역사적 사실과 근거
3장 독도영유권 분쟁에 대한 일본의 주장
1절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정부의 일관된 입장
2절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일본정부의 역사적 자료와 근거
4장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한 나의 객관적 견해 및 후기
1절 독도영토 분쟁의 극복에 대한 견해
2절 적성을 끝마치며...
본문내용
1장 독도의 객관적 사실관계
1절 독도의 위치
한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 울릉도 동남쪽 49해리, 북위 37도 9분30초, 동경 131도 55분의 위치에 속한 독도. 일본 시마네현 오키군 고카촌 오키도 북서쪽 86해리위치한 다케시마(竹島) 하나의 지역아래 달리 불리우고 있는 이 섬지역. 한국과 일본은 아직 끝나지 않은 영토 분쟁의 길을 걷고 있다.
2절 독도분쟁의 역사적 배경
독도분쟁의 시발점은 역사적으로 거슬로 올라가 봐야하는데, 우선 울릉도의 역사를 모르면 안된다. 울릉도는 한반도에서 115km의 해상에 위치해 있는 화산폭팔로 인해 형성 된 화산섬이다. 울릉도는 서기 512년 이후 실효적 한국의 지배하에 있던 섬이었다. 그러나 조선은 울릉도로의 선박도항을 모든 백성들에게 금지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에는 크게 나누어서 두가지의 원인이 존재하였는데, 첫 번째로는 나라가 징수하는 세금으로부터 수많은 백성들이 섬으로 도피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았던 것과, 두 번째로는 끊임없는 약탈을 일삼아 오던 왜구에 의한 내습으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시대 발효됐던 이 무인도 정책은 1438년부터 1881년 까지 약 400년 이상 지속되며, 울릉도는 물론 독도마저 400년이 넘게 조선백성이 넘나들 수 없던 미지의 섬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맞물려 일본은 17세기 초두 호키국 (현 돗토리현) 요나고의 해운업자 였던 오타니 신키치라는자가 항해 중에 폭풍을 만나 무인도가 된 울릉도에 표착하게 된다. 1616년 그는 새로운 섬의 발견이라고 생각하여 귀국 후에 동료인 무라카와 이치베와 함께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로의 도항 허가를 받는다. 울릉도는 그때 발견 이후부터 일본 내에선 "다케시마"라고 불리게 되었다. 오타니, 무라카와 양가는 그 후 매년 교대로 울릉도에 건너가 강치사냥이나 전복채취, 목재의 벌채 등을 하며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으며, 양가의 울릉도 경영은 78년간 계속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울릉도로의 항해코스에는, 오키도에서 마츠시마(현재의 독도또는 다케시마)를 중계지로 하고 있었다. 오타니, 무라카와 양가는, 이 마츠시마의 경영도 직접 하고 있었다. 마츠시마가 항로중의 기항지, 고기잡이와 사냥지로서 이용되어 강치 사냥을 했던 기록도 남아있다. 에도막부의 마츠시마에 대한 도항 허가또한 1656년도 이 후로 승인 된 상태였다.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면 15세기 한국측에서 4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울릉도 일대의 수역을 사람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