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
- 최초 등록일
- 2011.12.04
- 최종 저작일
- 2011.12
- 1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에 관해 조사하는 과제 입니다.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에 관해 작성 했습니다.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구매해 주시거나,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에 관한 리포트 작성이 필요하신 분이 구매해 주세요.
목차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
본문내용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
[답사기] 부여, 공주 문화제 기행문
○무령왕릉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108종 4,687점입니다. 연도에는 왕과 왕비의 지석(誌石) 2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오수전 한 꾸러미가 얹혀 있었습니다. 지석 뒤에는 석수가 남쪽을 향하여 서 있었습니다. 묘실의 관대 위에는 왕과 왕비의 목관재가 가득 놓여 있었습니다. 목관의 판재들 밑에서는 왕과 왕비가 착장하였던 장신구류와 부장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중요 장신구류로는 금제관식, 금제이식, 금은제허리띠, 금동제신발, 금제팔찌 등이 있고 왕의 허리에서는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봉문환두대도가 출토되었습니다. 그 밖에 왕과 왕비의 두침 및 족좌가 목관 안에 놓여 있었고, 그 외의 중요 부장품으로는 청동거울 3면과 동탁은잔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국립 공주박물관의 홈페이지에서 찾은 무령왕릉실에 대한 설명이다. 우선 전시실을 들어가면서부터 느낀 것인데 역시 왕의 무덤 전시실답게 반짝반짝 황금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온 통 황금색으로 치장한 무덤을 보고 그 당시 무령왕의 힘과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황금무덤도 무덤일 뿐 지금은 죽어 지하에 있는 무령왕과 왕비를 생각하니 옛날 그토록 화려했던 고려왕조의 궁터인 만월대도 우거진 가을 풀을 보고 무상함을 느낀 원천석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왕릉의 널길 입구에 2장의 지석이 놓여 있었는데, 비록 내용은 소략하지만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을 입증해 주었고, 왕릉 출토유물과 관련된 유적·유물의 편년 연구에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무령왕을 무덤에 안치할 때 묘지와 간지도, 매지권(買地券)을 만들어 넣었고, 그 후 529년 왕비를 안치할 때 매지권을 상하로 뒤집어 뒤편에 왕비의 묘지를 새겼습니다. 이 지석은 우리나라 지석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며, 지석이 출토됨으로써 삼국시대의 무덤 중 피장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 되었습니다. 비록 내용은 소략하지만 『삼국사기』에 누락된 사실을 보충할 수 있었고, 매지권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인들의 사상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되었습니다.
무령왕릉이 무령왕의 무덤인지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지석이다. 원래 전시실안의 지석은 금으로 된 지석인데 박물관 홈페이지에 가보니 실제 지석의 사진과 설명이 나와 있었다. 진정 무령왕릉을 보고 싶어 멀리서 찾아온 관람객의 입장이라면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면 많이 아쉬울 것이다. 나도 화려하게 도금된 복제품을 본다는 생각에 약간의 허무함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의 보물 국보를 전시하는 입장에서 혹시 모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복제품은 전시하는 입장의 아쉬움도 마찬가지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 릉 안에서 왕과 왕비를 지켜준 석수를 구경 하였다.
참고 자료
[출처] 무령왕릉 [武寧王陵 ]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