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대외관계, 거란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1.12.02
- 최종 저작일
- 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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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의 대외관계에 대한 글로 특히 거란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함
목차
Ⅰ. 머리말
Ⅱ. 발해의 건국과 거란의 관계
Ⅲ. 발해, 돌궐, 거란의 협조와 대당 공격
Ⅳ. 발해의 멸망과 거란의 관계
Ⅴ.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한 나라의 역사를 볼 때 다른 나라와의 대외관계는 매우 중요하게 바라봐야한다. 역사란 어느 한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그 역사가 성립되고 발전되는 과정은 단지 그 한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기에 대외관계사적 접근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외관계사적 관점에서 볼 때 거란족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역사는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란족은 유목민으로서 5세기 중엽부터 내몽골 랴오허 강의 서쪽 지류인 시라무렌강 유역에 나타나 거주하던 민족이다. 우리나라와 거란과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이어졌으며 이는 옛 문헌들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구당서에서는 ‘거란이 고구려 지역을 노략질 하였으나, 광개토대왕의 공격을 받고 거란의 일부가 복속되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고구려와 거란의 대외관계를 알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우리나라와 거란과의 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거란은 중국과 고구려에 복속하였다가 당나라 시대에는 중국에 복속되었으며, 907년 야율아보기는 거란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요나라를 세웠고 발해를 멸망시켰다. 발해가 멸망한 후에도 거란은 993년부터 1019년까지 고려에 쳐들어왔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거란은 대외 관계사적 측면에서 볼 때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거란과의 대외 관계사에서 주목해 볼 만한 것은 발해와의 관계이다. 발해는 신생국으로 활발한 대외교류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려 노력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해와 거란의 대외관계를 알 수 있으며 이는 발해의 흥망사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Ⅱ. 발해의 건국과 거란의 관계
발해와 거란의 초기 대외관계는 발해의 건국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고구려 유민들은 전쟁을 피하여 요서 및 돌궐의 다른 지역으로 스스로 이동하였거나, 강제로 요동 및 당의 내지로 옮겨가 살게 되었다. 한규철, 『발해의 역사와 문화』,신서원, 1994, 37p
고구려 유민의 발해 건국 과정에서 고구려 유민들이 결집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바로 이진충의 난이다. 구당서에서는 발해의 건국과 이진충의 난을 아래와 같이 전하고 있다.
참고 자료
『舊唐書』
동북아역사재단, 『발해의 역사와 문화』, 동북아역사재단, 2007
송기호, 『발해정치사연구』, 일조각, 1995
한규철, 『발해의 대외관계사』, 신서원, 1994
김은국, 「발해 대외 관계의 전개와 성격: 당, 신라, 거란과의 관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1991
서영수, 「동아교섭사에서 본 발해의 국제적 위상」, 문화사학 21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