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 최초 등록일
- 2011.11.25
- 최종 저작일
- 2011.11
- 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 본 문서는 한글 2005 이상 버전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
한글 2002 이하 프로그램에서는 열어볼 수 없으니, 한글 뷰어프로그램(한글 2005 이상)을 설치하신 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박상진. 그는 1884년 울산에서 꼽히는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박시룡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그는 모두의 기대를 받으면서 자랐다. 13살이 되던 해 그는 왕산 허위의 제자로 신학문을 익히기 위해서 양정의숙이라는 사립학교의 법률과에 입사하였다.
그의 스승인 허위는 고종퇴위 사건 이후 의병을 일으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며 그가 스승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성장하게 된다. 스승의 순국 이후 영향을 받은 박상진은 각종 사회단체에 가입하여 김좌진, 안희제, 안창호등의 영향을 받게 되며 그 이후부터 그는 자신의 공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졸업 후 1910년, 판사 등용 시험에 급제 하였으나 판사 임용을 거절한다. 이 같은 선택에는 안중근의 영향이 컸으며, 1910년 8월 한일 강제 병합 후에는 박상진의 인생 목표가 사라지게 되어 그는 중국 만주로 여행을 떠난다.
만주에서 석주 이상룡과 일종 김동삼을 만남으로 인해서 그는 투쟁의 방향을 세우게 되며 일본제국주의자와 반역자를 처단하는 고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스승인 허위와 이상룡에의 애국투혼에 감명을 받은 박상진은 전국의 의로운 사람들을 찾아 나서게 되며, 정미의병이후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게 된다. 대한광복회는 비밀 조직으로써 그는 아버지의 회갑연 초대를 빌미로 지사를 모은다.
대한광복회는 계몽주의적 성향과, 의병적 성향을 모두 소유하고 있으며, 특히 대한광복회를 조직할 때 허위선생의 제자라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다.
1915년 7월 그는 대한광복회의 총 사령을 맡고, 각 도에 책임자를 맡기고 일을 진행한다. 비밀, 암살, 폭동, 명령 이라는 4대 강령으로 대한광복회는 투쟁을 준비하며, 만주의 기지 건설을 위해 사람들을 만주로 이민 시키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