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붕당정치
- 최초 등록일
- 2011.10.31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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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후기의 붕당에 의한 정치와 그 의의와 평가
목차
(1) 붕당정치의 시작
(2) 서인의 집권과 노론·소론의 분열
(3) 붕당정치의 원인과 그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조선초기 권력층에서 배제된 채 초야에 묻혀있던 사림(士林)이 중앙정계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성종대부터이다. 그러나 기존의 훈구(勳舊)세력에 의해 네 번에 걸쳐 사화를 맞으며,
타격을 입기도 하나, 명종대 소윤일파가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죽음과 같이
몰락하며, 정계의 헤게모니를 잡기 시작하여, 선조대에는 중심세력이 된다. 하지만 이들 사림
들 사이에도 학파에 따라 온건·강경파의 대립 등 붕당을 이뤄 대치하는 붕당정치(朋黨政治)가
시작 된다. 붕당의 시초는 1575년 선조대인데, 김효원(金孝元)을 중심으로 한 신진사림들과
명종비의 동생인 심의겸(沈義謙)의 대립인데, 이조전랑(吏曹銓郞)직을 두고 대립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조전랑은 품계가 높지는 않지만 문신들의 인사와 3사의 의견을 통일하는
요직이었다. 또한 이조전랑직은 전임자가 후임자를 정하는 관례가 있었는데, 전임 이조전랑
오건(吳健)의 후임으로 김효원을 천거하자 이조전랑의 상관인 이조참의(吏曹參議)로 있던
심의겸이 김효원이 과거 척신인 윤원형의 집에 드나든 일이 있다하여 반대하였다. 그러자
오건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고, 김효원은 후에 조정기(趙廷機)의 추천을 받아 전랑직에 앉게
된다. 그리고 후에 전랑직을 추천할 때 김효원에게 심의겸의 동생인 심충겸(沈忠謙)을 추천
하자 김효원이 이를 거부하며 양측의 대립이 격화 되었다. 이때 심의겸은 서울의 서쪽에 살고
김효원은 동쪽에 살고 있어, 이들을 서인과 동인이라 하였다. 동인에는 이황(李滉)과 조식
(曺植)의 문인이 많았고, 서인에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계의 학자가 많았다. 초반에는
당시 정계에 있던 이이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동인이 우세했으나, 동인인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을 계기로 동인이 타격을 받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