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을 답사하고 현황파악
- 최초 등록일
- 2011.10.25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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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쇄원 답사하고 현황파악 &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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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쇄원을 답사하고 현황파악하기.
소쇄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원림으로 양산보의 의하여 조영되었으며,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 광주호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이 지방의 진산인 무등산이 바라다 보이고 위도른 장원봉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곳으로 무등산 원효계곡이 광주호로 흘러 내려오는 증암천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의 경승지와 더불어 지역 선비와 주민들의 휴식장소로서, 학문도야 장소로서 넓게 이용된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취가정, 독수정 등 많은 독립된 정자들과 원림들이 포치되어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쇄원이다.
소쇄원의 어원으로는
소쇄원(瀟灑園)
瀟 - 빗소리 소, 혹은 물 맑고 깊을 소
灑 - 물 뿌릴 쇄, 깨끗할 쇄
瀟灑 - "깨끗하고 시원하다"
물 맑고 시원하며 깨끗한 원림,
속세를 떠난 느낌이 있다는 뜻
즉, 시냇물이 흐르는 산 속의 마음과 몸이 깨끗해지는 곳,
가고싶은 곳, 살고 싶은 곳 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쇄원은 양산보(梁山甫:1503-1557)에 의해 조영되었다. 양산보의 본관은 제주, 자는 언진(彦眞)이라 했으며 연산군 9년에 이곳에서 양사원(梁泗元)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양산보는 나이 15세 되던 1517년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문하생이 된다. 1519년 스승 조광조가 대사헌으로 있을 때, 현량과(賢良科)를 실시하여 자기 문하의 이른바 신진사류를 대거 등용시킨 일이 있었는데 양산보도 이때 급제한다. 하지만, 스승 조광조의 유배와 함께 바로 낙향하여 창암촌으로 되돌아 온다. 조광조는 결국 그 해 겨울 사약을 받아 죽게되고 이후 양산보는 55세로 일생을 마칠 때까지 고향에서 은일자적인 삶을 보내게 된다. 그를 처사공(處士公)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입구
좌우의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이 길은 약간의 경사로로 되어 있는 오솔길로 뭔가 새로운 세계로 인도되고 이끌려가면서 언덕 너머에
참고 자료
한국의 건축, 김봉렬, 공간사
소쇄원 긴 담에 걸린 노래, 정기호 외 공저, 태림문화사
http://www.moosim.co.kr/thema5.html
http://arch.hannam.ac.kr/~hpw/garden/garden-k/sosoe-k.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