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및 근세 초기의 체육
- 최초 등록일
- 2011.10.12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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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 및 근세 초기의 체육
체육사철학
목차
1. 초기 기독교와 체육 1
2. 수도원의 체육 9
3.`기사의 체육 19
4. 중세 중국의 체육 28
5. 중세의 스포츠 교육 6. 문예 부흥기의 체육
7. 실학주의와 체육
8. 단련주의와 체육
9. 자연주의와 체육
본문내용
1. 초기 기독교와 체육
중세의 사회와 문화
유럽에서는 4세기 말엽부터 10세기 말까지 약 600여 년 동안 혼란과 무질서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봉건제도가 생겨났다. 봉건제도의 핵심은 주종제도였다. 국왕을 정점으로 하고, 평기사를 저변으로 하는 피라미드형 계층구조가 형성되었다.
봉건제도와 가톨릭교회를 기반으로 성립된 중세 유럽 사회는 11세기에 들어 점차 정치적 안정과 사회 경제적 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십자군 원정으로 서유럽 사회가 차츰 변하면서 장원제의 기틀이 무너지고 기사계층의 특권적 지위도 흔들리게 되었다.
도시의 발달로 시민계층의 세력이 커지자 국왕은 왕권을 강화하여 봉건 제후들을 눌러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해 갔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의 결과는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의 변화는, 바로 중앙(고대제국)의 통치력이 약해진 결과에 따라 지방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귀족의 대토지사유제가 심화되고 자유민(자영농)의 몰락으로 경제가 불경기로 접어들었다. 경기의 불황에는 고대제국의 통치력 감소에 따라 다른 고대사회(동양과 서양)와의 무역이 감소하면서 상업과 무역으로 인한 부의 축적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세사회의 농업중심적인 폐쇄적 장원경제제도는 결국 소수의 귀족층에게는 유리한 사회였지만, 결과적으로 다수의 인민에겐 이러한 사회로의 이탈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반면 중세사회를 지배했던 유럽의 교회(기독교)는 이러한 중세사회의 속박에 일정 정도 정신적·문화적 장치를 마련하는데 기여하였고, 따라서 상당기간 봉건시대의 존속은 불가피 하였다. 이러한 다수 인민의 속박구조를 개별적으로 타개하기 위해 모험심 이 깊은 사람들에 의한 대륙간 여행 및 상업과 무역으로의 치중은 유럽의 경우 중세도시의 발전을 가져왔다. 이처럼 상업과 무역에 의해 중세도시가 출현하고 이 도시에서 성장한 시민계급(부르조아)이 르네상스 이후 계몽사상에 의해 정신적 무장을 통해 시민혁명의 주도세력이 됨으로써 서양은 근대사회로의 변혁에 나아가게 되었다. 중세사회의 출현은 이러한 통일국가의 지속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바로 불경기의 시대가 지속되면서 고대통일제국은 해체되거나 분열되면서, 지방분권적인 귀족이나 봉건영주에 의한 장원경제 (폐쇄적인 경제제도)로 말미암아 권세가 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농민들은 반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중세사회의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따라서 중세사회의 시작은 고대제국의 붕괴와 때를 같이하며, 중세사회 내내 중앙의 국가권력은 지방의 귀족이나 봉건영주에 대해 무력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