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전쟁관련 연구제안서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제1장 서 론
제1절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한국전쟁은 김일성 정권이 통일국가의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남한을 남침하면서 시작된 이승만과 김일성 정권간의 내전이었다. 동시에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이하 중국군)이 참전한 국제전이었으며, 세계의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대결한 이념전이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민중들이 처음으로 겪은 총력전 양상의 현대전이자 전선의 이동이 극심한 피스톤 전쟁이었다.
전선의 빈번한 이동으로 인해 한국전쟁에서도 예외 없이 많은 피난민이 발생하였고 남북한 주민들은 몇 차례의 피난을 반복하였으며 피난의 성격도 다양한 형태가 나타났다. 전 기간에 걸쳐 발생한 남북한 피난민의 규모는 대략 5백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난민을 적절히 분산 수용하고, 이들에 대한 구호대책을 마련하며, 적절한 통제를 하는 것은 전쟁 수행상 매우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피난민 대책은 인도주의적 차원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사기 유지와 군사작전상에도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일인 것이다. 피난민에 대한 구호가 원만하지 못할 경우, 이들의 불만이 표출되고 집단적인 소요가 일어날 수도 있다. 또한 피난민에 대한 통제가 안되면 피난민 행렬이 전투지역을 통과하거나 아군의 주요 교통로나 수송수단을 차지하게 되어 기동과 보급 등의 군사작전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가 있었다. 더욱이 피난민을 가장한 적의 게릴라 침투는 군사작전에 큰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전쟁당시 한국정부와 유엔군은 피난민의 분산과 수용 그리고 통제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발발을 예상하지 못한 정부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피난민 철수대책을 수립해 놓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초기 지연전기간에는 피난민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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