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고전시가론 청구영언 가곡원류
목차
없음
본문내용
콩조
18세기 초(『(진본) 청구연언』)와
19세기 후반 (『가곡원류』)가집의
변화와 차이
팥조
『청구영언』의 연군(戀君), 견적(譴謫), 보효(報效) 주제의 차이
18세기 중세적 사유방식 이해
『청구영언』 294-302번 작품분석
<중 략>
<청구영언> 서문 中
김천택은 노래를 잘 불러 온 나라에 명성이 났다.
성률에 정통하였고 겸하여 문예에도 뛰어나 이미 스스로 새 노래를 지어 마을 사람들에게 주어 익히게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名公과 선비들이 지은 것과 여항의 가요 중에서 음율에 맞는 것 수 백여 수를 수집하여 잘 못된 것을 바로 잡고 한 권에 모아 나에게 서문을 지으라고 하였다.
그 뜻은 그것을 널리 전하는 데에 그의 의지(목적)가 있는 것이다.
가객들의 시조를 엄선하여
정리하여 알리고자
불안한 사회 정황, 노래가 인멸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중 략>
내가 매번 가보(歌普)를 보니 시속(詩俗)의 노래가 순서와 명목이 없어 보는 이로 하여금 상세히 알 수 없게 한다. 이런 까닭에 문인 안민영과 상의하여 각 악보를 간략히 취해 우계면(羽界面)의 명목(名目)과 순서를 나누고 정하여 새로운 가보를 초록하니 후인들로 하여금 소상히 쉽게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우조와 계면조는 본디 고착된 것이 아니고 또한 옮겨감이 형편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방식이 있으니 오직 노래하는 자의 변토에 달려 있다. 혹 우조를 계면조로 삼거나 계면조를 우조로 삼고 삭대엽(數大葉), 농악편(弄樂編)이 서로 옮겨가며 노래하기도 .하니, 단지 가보 상의 명목에만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운휘의 평상거입 고저청탁도 역시 권변, 합세의 이치가 있고, 또 소위 여창 사설 또한 여창에만 고착된 것이 아니라 남창 사설 중 옮겨 된 것도 있으니 역시 이치가 신통한 자가 아니면 깨닫지 못하고 해득할 수 없을 따름이다.
남창, 665수
곡조에 따른 배열
작가의 신분차이나 연대순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음
유명씨와 무명씨의 작품도 곡조에 따라 뒤섞여 있음
여창, 191수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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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영언』 - 한성대학교 학술정보관
『가곡원류』 - 국립국악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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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naver.com, 검색일: 2011. 05.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