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 낙산사 발표
- 최초 등록일
- 2011.09.03
- 최종 저작일
- 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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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 낙산사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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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부석사 낙산사
부석사[불교사적 위치]
신라의 불교는 눌지왕 때에 들어와 법흥왕 때에 수용된 뒤에 크게 발전하였다. 중국을 통하여 전입된 교학 불교는 신라 불교로 하여금 종파성을 띠게 하였는데 가장 특징적으로 운위되는 종파는 화엄종과 법상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전법 사실이 뚜렷하고 종찰이 확실한 것은 의상의 화엄종이다..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본찰로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이다.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시 마찬가지였다.
부석사 원융국사비에는 지엄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의상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법하여 원융국사에까지 이른 것과 가 법손이 된 뒤 부석사에 자리잡았다는 사실 등이 밝혀져 있다.
초기
중국 유학후 수도처로 삼아 안주하다가 뒷날 거대한 사찰을 이룬 곳이다. 나 부석사의 생김을 정리한 역사적 기록물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비석에 쓰인 몇 문자나 절을 재건한 기록, 보수한 기록 등만이 전한다. 부석사가 세워지기까지에 관해 `삼국사기`에는 고승 의상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 전하며 `삼국유사`에는 "의상이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교(불교)를 포교하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고 전한다. 그리하여 신라 문무왕 16년(676) 2월에 의상대사가 문무왕이 뜻을 받들어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러나 처음 절이 생겨날 당시가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는 아니었다.
심오한 뜻을 닦은 것으로 보아 7세기 후반의 부석사는 의상의 영정이 있는 조사당을 중심으로 초가집이 몇 채 있는 아주 청빈한 양상이었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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