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의 고택들
- 최초 등록일
- 2011.07.26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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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회마을의 고택들에 대한 소개
목차
(1) 양진당(養眞堂) - 보물 제 306호
(2) 충효당(忠孝堂) - 보물 제 414호
(3) 하동고택(河東古宅) - 중요 민속자료 제 177호
(4) 하회북촌댁(河回北村宅) - 중요 민속자료 제 84호
(5) 하회남촌댁(河回南村宅) - 중요 민속자료 제 90호
(6) 하회주일재(河回主一齋) - 중요 민속자료 제 91호
(7) 하회류시주가옥(河回柳時柱家屋) - 중요 민속자료 제 87호
(8) 겸암정사(謙菴精舍) - 중요 민속자료 제 89호
(9) 빈연정사(賓淵精舍) - 중요 민속자료 제 86호
본문내용
하회마을의 고택들
(1) 양진당(養眞堂) - 보물 제 306호
양진당은 풍산 류씨의 대종택으로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선생의 종택이기도 하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 목조기와인데, 높은 축대 위에 세워져 누각과 같은 자태를 드러 낸다. 사랑채 정면에는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당당하게 게판되어 있는데, 입암은 겸암 선생의 부친인 입암 류중영 선생을 말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초에 축조된 것으로 당호로 쓰이는 양진당은 겸암 선생의 6대 손인 영(泳)공의 호에서 취한 것이다. 양진당 현판은 근세 사람 최동진의 자필이다.
자좌오향(子坐午向, 정남향)의 남향집이며 99칸으로 전해 오지만 지금은 53칸이 남아 있다. 양진당의 사당은 크고 작은 두 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입암 류중영 선생의 불천위(不遷位 - 끼친 덕과 공이 4대만에 제사를 그만두기에는 죄송해서 국가나 사회에서 영원무궁토록 제사를 지내게 한 제도, 서애, 겸암, 입암선생 들이 불천위이다) 사당이며, 하나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불천위 사당이다. 이처럼 풍산 류씨 대종택인 양진당에는 두 위(位)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겸암 선생 불천위 사당 담 너머로는 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듯 수령이 800여 년 이상 된 거대한 느티나무가 보이는데, 동신으로 모시는 `삼신당`이 자리잡고 있다. 학록정사 옆으로 난 좁은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원래 하회마을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마을 외곽에 있던 나무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도 타고 남은 일부가 남아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2) 충효당(忠孝堂) - 보물 제 414호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의 종택이다. 선생이 삼칸 초옥(草屋)인 농환재(弄丸齋, 풍산읍 서미리)에서 별세한 뒤 일생을 청백하게 지낸 선생의 유덕(遺德)을 기리는 수많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