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근대유학생1호 유길준
- 최초 등록일
- 2011.07.20
- 최종 저작일
- 2010.11
- 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역사스페셜,한국사 관련 레포트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수업번호 : 15번
생명과학부 우성준
나는 사실 ‘유길준’이라는 인물을 잘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동영상을 보는 내내 어떠한 평가나 생각을 하기 전에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유길준’이라는 인물은 조-미 조약이 체결된 후 미국에 보빙사 파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첫 방문한 후 미국에 남아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유학생이자 국비 유학생이었다. 유길준은 노론 강경파의 양반 출신이지만 과거를 포기하고 신학문을 위하여 유학을 결정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내 정세가 불안하여 유길준은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하였다.
미국 유학에 앞서 유길준은 일본으로 먼저 유학을 갔다. 구한말, 정부가 개화문제로 갈등하던 시기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하였는데 그 때 유길준도 포함되었다. 유길준은 일본에 남아 유학을 결정하였다. 하지만 국내 정세가 안 좋아서 정부에서 유길준에게 귀국을 명한다. 그리고 그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도 갑신정변 등으로 인한 국내정세 불안으로 다시 귀국을 명받았다. 정부에서 유길준을 외교전문가로서 제격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유학에 대한 꿈을 완전히 실현시키지 못하고 유길준은 세계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귀국하게 된다. 그런데 귀국하자마자 포도청에 구금되는데 귀국 중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과 접촉했다는 이유이다. 이는 청의 ‘원세개’가 조선의 개화를 차단하기 위하여 개화의 주동 인물이 될 유길준을 모함한 것이다. 구금 중에 세계 여러나라를 탐방한 경험을 토대로 조선의 개화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한 ‘서유견문’을 쓴다.
서유견문에는 서구문명을 완전히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조선의 실정에 맞게 선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우리 것과 조화를 시킬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무턱대고 개화하는 방향을 반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의 근거에는 일본 유학생활 중 스승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상’과 조선 유교사상이 많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1892년 유길준은 해금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