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회재 이언적의 철학과 사회정치를 풍부하게 다룬 자료입니다.
목차
1. 회재 이언적의 생애
2. 회재 이언적의 저서
3. 회재 이언적의 학문적 특성
4. 회재 이언적의 철학 사상
5. 회재 이언적의 정치 사상
6. 참고문헌
본문내용
1. 회재 이언적의 생애
회재 이언적(1491~1553)은 조선 중종 때의 정치가요 사상가이다. 초명은 적(廸)이었으나 왕의 사자(賜字)에 의해 ‘언’(彦)자를 덧붙였다.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 자계옹(紫溪翁), 또는 자옥산인(紫玉山人)이다. 본관은 여주이고, 경상도 경주부 양좌촌(지금의 경주군 강동면 양동리)에서 출생했다.
회재는 사림파의 영수로서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관계가 있었던 실로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가 8세 되던 해에 무오사화(1498년)가 일어났고, 14세가 되던 해에 갑자사화(1504년)가 일어났지만 모두 유소년시절의 일이었다. 18세가 되던 해에 결혼을 하였고, 23세에는 생원시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고, 25세가 되던 해에는 경주의 주학 교관(州學 敎官; 지방 학교 선생)이 되었다. 27세에는 부정자(副正字)를 거쳐 정자(正字)에 임명 되었고, 그 후 29세 되던 해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서 정암 조광조 등 도학자들이 참화를 당했을 때는 아직 정8품의 교서관저작으로서 미관말직이었을 뿐 아니라, 마침 조부의 상을 당하여 향리에 내려와 거상 중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었다.
32세에는 세자를 가르쳤고, 33세에는 성균관의 전적(典籍), 인동(仁同) 현감, 춘추관(春秋館) 기사관(記事官), 36세에는 사헌부(司憲府) 특평(特平), 병조 정랑, 이조 정랑 이었다. <중략>
이상과 같이 이언적은 왕정의 근본을 민본이라 주장하고 있다. 또한 민본은 누구나 다 인간으로서의 마음속에 ‘인(仁)’을 갖추고 있으며, 천과 지의 자양(資養) 속에 만물과 함께 삶을 잘 보장해주는 것이 좋은 정치 곧 인의 정치이며, 이 인의 정치를 통하여 평화의 극치인 중화(中和)의 세계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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