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태후 역사 그대로
- 최초 등록일
- 2011.06.06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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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천추태후, 역사 그대로> 서평입니다
천추태후에 대한 보편적인 내용을 위주로 서술해서
다른 천추태후 관련 책의 서평으로도 쓰일수 있습니다 ^^
목차
없음
본문내용
‘천추태후, 역사 그대로’는 지금껏 남성중심의 역사관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천추태후를 재조명하는 참신한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천추태후 뿐만 아니라 그녀와 연관이 있는 고려의 많은 왕에 대한 서술이 있지만, 책 제목이 ‘천추태후, 역사 그대로’인 만큼 필자는 천추태후의 삶과 그녀의 정책에 집중하여 소감을 써보고자 한다.
천추태후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기여했던 강력한 호족 ‘황주 황보씨’ 가문의 인물이며, 경종이 즉위하고 난 후 자매지간인 헌정왕비와 함께 그의 왕비로 들어간다. 저자는 그녀의 아들이 숭덕궁의 적자라 불렸다는 점에서 당시 그녀가 숭덕궁비라 불렸을 것이라 추정한다. 헌정왕비와 숭덕궁비 중 누가 손위인지는 불분명하나 사촌지간인 경종과 혼인했다는 점에서, 고려시기 근친혼의 전통을 알 수 있다.
그녀와 그녀의 가문은 경종의 치세 당시 강력한 권력을 쥐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경종의 사후 후계자 경쟁에서 숭덕궁비의 어린 원자가 개령군(숭덕왕비의 오빠)에게 밀리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숭덕왕비는 권력에서 멀어졌으며 성종의 견제 때문에 어린 아들조차 직접 키울 수 없었다. 이렇듯 힘든 시기에 그녀는 김치양을 만나게 된다. 김치양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지만 숭덕왕비가 김치양에게 많이 의지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중 략>
천추태후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주의에 물든 역사가들에 의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의 중요성은 다른 여느 왕과 비해서도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를 보아도 천추태후는 <후비전>에 경종의 배우자들 중 한 명으로 조촐하게 실려 있을 뿐이다. 그녀는 분명 고려를 사랑했고 고려를 강력하고 빛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성종 치세 유학자들에 의해 전통이 경시된 경향을 그녀가 나서서 바로잡지 않았다면 그녀 이후의 독자적인 ‘고려 문화’도 형성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거란과의 전쟁으로 주춤했던 황제국의 회복으로 고려의 위상을 높인 것 또한 의미가 큰 업적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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