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테니스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1.05.06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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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테니스와,세계의테니스,테니스의경기규칙,경기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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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의 테니스 역사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부터였다. 1908년 4월 18일자 탁지부(현재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동구락부를 조직한 뒤 미창동에서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라 한다.그러나 이것은 일본에서 파생한 연식 정구였으며 테니스(경식정구)는 그보다 훨씬 뒤의 일로써, 정식 경기가 열린 것은 20여년이나 지난 후였다. 1927년 9월 2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용산의 철도국 코트에서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사 경성지국 주최로 제1회 테니스 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테니스 경기이다. 한국 테니스가 국제무대에 첫 선을 보인 것은 1960년 국가대항전인 데이비스컵에 출전하면서이다. 하지만 본무대라 할 수 있는 국제투어대회에 본격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것은 10여년이 지난 뒤였다.지금은 은퇴한 이덕희는 1972년 12월 호주오픈 1회전에서 호주의 팸 휘트크로스를 물리치며 한국인 최초의 그랜드슬램대회 출전과 첫 승을 기록했다. 79년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 최초의 프로선수로 등록한 이덕희는 80년 4개 그랜드슬램대회에 모두 출전했고 81년 US오픈에서는 프랑스오픈 우승자 버지니아 루치치(루마니아)를 격파, 16강에 올랐다. 1982년엔 WTA투어 미국 플로리다 포트마이어 대회에서 남아공의 이본 베어마크를 2-0으로 격파하며 한국인 최초로 투어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3년 은퇴한 이덕희가 81년 기록한 세계랭킹 47위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남자선수로는 2000년 세번째로 그랜드슬램대회에 출전한 이형택이 US오픈 1회전에서 제프 타랑고(미국)를 3-1로 꺾고 남자테니스 그랜드슬램대회 첫 승을 신고했다. 이형택은 세계 11위의 강호 프랑코 스퀼라리(아르헨티나)와 라이너 쉬틀러(독일)를 연파하며 16강 신화를 창조했다. 그리고 2003년 1월 ATP투어 아디다스 인터내셔널대회에서 세계 4위 페레로를 꺾고 우승함으로써 남자선수로서는 처음으로 ATP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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