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세도정치
- 최초 등록일
- 2002.08.04
- 최종 저작일
- 20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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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대적 배경
1) 권력의 독점
2) 외척 세도
3) 정치 기강의 문란
2 삼정의 문란
1) 전정
2) 군정
3) 환곡
4) 암행 어사
3 세도정치의 영향
1) 농민의 유랑
2) 농민 의식의 성장
3) 홍경래의 난
4) 진주 민란
본문내용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본디 세도 정치라 함은 조광조가 도학의 원리를 정치 사상으로 심화 시킨데서 주창된 것으로 사림들이 표방했던 통치 원리였다. 즉 천리를 밝히고 인심을 바르게 하며 정학을 북돋는 일 등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세도 정치가 성립되기 위한 운영의 기반은 무엇보다도 공정한 언론과 인재의 등용 그리고 이에 대한 왕의 신임 내지는 위탁 등이었다. 이때문에 각 계파간에 시비와 분열이 일어났고 이것이 사화나 붕당정치로까지 비화되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왕의 신임과 위탁을 빙자한 변태적인 세도 정치를 낳았다. 이렇게 외척이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를 세도 정치라 했는데 이때의 세도는 사림 정치가 지향했던 본래의 '세도(世道)'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재정치였기 때문에 '세도(勢道)'라 표기하였다.1800년 정조가 죽고 순조가 11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게 되자 정조의 유탁을 받은 김조순이 영조의 계비이며 사도세자 죽임의 주역인 김귀주의 누이이기도 한 정순 왕후의 수렴청정에 협조하면서 그의 딸을 순조의 비로 들이는데 성공한다.1804년 김대비가 수렴청정을 거두고 1805년 세상을 뜨자 이때부터 안동 김씨가 본격적인 척족 세도를 시작하게 된다. 김조순은 본래 정조의 신임을 받던 시파이지만 벽파 정권에 협조하면서 겉으로는 전혀 당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모난 짓을 하지 않았다.
참고 자료
없음